<2012-01-01 월간 제739호>
[4-H인의 필독서] 박목월·조지훈·박두진 ‘청록집’

힘들게 견뎌낸 과거, ‘미래’라는 희망을 선물하다

새해, 새날이다. 2012년 새해를 맞으며, 아침 해를 밀어 올리듯 힘차게 하루를 시작한다.
새롭다는 것은 희망이다. 새로움이 주는 희망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 다름 아닌 어제다. 애쓰고 노력하면서 견뎌낸 과거의 시간이다. 그 과거가 미래라는 희망을 선물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새해 아침, 1946년 첫 출간된 시집 한 권을 펼쳤다.
오래된, 하지만 미래를 품고 있는 책, 바로 ‘청록집’ (박목월ㆍ조지훈ㆍ박두진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열심히 외웠던 ‘청록파 시인’인 박목월과 조지훈, 박두진이 함께 펴낸 공동 작품집인 ‘청록집’은 그야말로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시집 중 하나다.
1946년에 출간된 후 절판되었던 이 책이 출간 60주년을 기념하며 2006년, 독자들을 다시 찾아왔다. 이렇게 새로 펴낸 ‘청록집’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앞표지부터 읽으면 현대어로 손을 본 ‘현재의 청록집’을 만날 수 있고, 뒤표지를 펼친다면 1946년의 초간본 형태의 ‘오래된 청록집’과의 해후가 가능하다.
먼저, 뒤표지를 펼친다. 고풍스러운 초간본 청록집이다. 시간을 거슬러 1940년대 어디쯤을 여행하는 듯하다.
1946년 출간된 초간본과 동일한 ‘청록집’ 표지가 등장한다. 당시와 같은 종이와 글자체를 사용했고 세로쓰기로 되어 있으며 한자가 섞여 있는 작품들과 만나게 된다. 작가들의 초상화와 친필 서명도 들어 있다. 목차와 소인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앞표지를 본다. 한자로 된 책 제목 옆에 한글이 적혀 있다. ‘현대적인 청록집’은 한자에 한글 해석이 붙어 있고, 쉬운 한자어는 한글로 표기했다. 원래의 작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을 현행 국어 규범에 맞게 고쳤다. ‘청록집’은 앞에서 읽든 뒤에서 읽든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도록 독자들을 배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록집’에는 겨우 서른아홉 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간된 지 6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읽으며 사랑하고 아끼는 시편들이 많다.
박목월의 ‘나그네’, ‘청노루’ ‘산이 날 에워싸고’, 조지훈의 ‘승무’, ‘낙화’, ‘완화삼’, 박두진의 ‘도봉’, ‘묘지송’ 등의 작품이 그렇다.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지훈’,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박목월의 시 ‘나그네’를 읽어 보자.
‘강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 리 //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박목월 ‘나그네’ 전문

한 폭의 풍경화다.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고 멋이 있다. 박목월의 시 ‘나그네’는 조지훈의 시 ‘완화삼’에 대한 답시였다.
그 사연은 이렇다. 막 추천을 마친 조지훈은 1940년 어느 날, 경주에 있는 박목월에게 만나러 가겠다고 전보를 쳤다. 조지훈과 처음으로 만나게 된 박목월은 ‘조지훈 환영’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경주역으로 마중 나간다.
두 사람은 일주일동안 함께 지내며 술을 마시고 문학을 논했다고 한다.
이때 조지훈은 ‘-목월에게’라는 부제를 단 시 ‘완화삼(玩花衫)’을 지어서 목월에게 준다.
‘구름 흘러가는 / 물길은 칠백 리 /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 꽃은 지리라. //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조지훈 ‘완화삼’ 일부

다정하고 한 많은 시인들의 아름다운 만남이 있었기 때문인지 조지훈의 ‘완화삼’과 박목월의 ‘나그네’에서는 물씬 피어오르는 사람 사는 정을 느낄 수 있다.
이번에는 박두진의 시를 읽어본다. ‘도봉’이다.
‘생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 박두진 ‘도봉’ 일부

그렇다. 갈수록 쓸쓸한 인생이지만 어딘가에는 그대를 위해서 어둠과 슬픔을 감당하는 이가 있다. 그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그리하여 평안을 얻는다.
새해다. 묵은 것은 비우고 다시 시작하는 지금, 희망으로 가득한 미래를 만나고 싶다면, 60여 년 전 어느 한 때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책 ‘청록집’을 읽길 바란다.
그리하여 춥고 어둡고 외롭고 쓸쓸한 이 겨울을 견뎌내길! 다가올 봄을 준비하길! 이루어질 무엇을 기대하길!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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