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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1 월간 제73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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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골 통신 (22) 보기도 좋은 곶감타래 |
- 절기는 변함없이 돌아오고 - 이동희 / 소설가
"들판의 가을걷이가 끝나도 농가에서는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 곶감 타래 만드는 일은
목돈을 만드는 부업 중의 하나다."
입동이 지나고 소설(小雪)이 지났다. 절기에 맞게 눈도 조금 왔다. 이제 대설이 오기 전에 눈이 많이 올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하고 이상 기후 천재지변이 속출하여 하늘이 꺼진 듯이 눈과 비가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고 하지만 절기는 그대로 돌아가고 돌아오고 있다. 자연이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변하는 것인지 모른다.
들판의 가을걷이가 끝나고도 농가에서는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감만 해도 나무에서 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깎아서 매달아야 한다. 곶감을 만드는 것이다. 단감이 아니고 연시를 할 것이 아니면 빨리 깎아서 말려야 하는데 그것으로 수정과를 하여 먹고 겨울 식량을 하기도 하고 과자나 사탕 대신 아이들에게 주전부리가 되기도 하지만 옛날과 달리 그것으로 농가 수입을 올린다.
자기 집 감만 깎는 것이 아니고 사가지고도 깎아 몇 동(1동 100접)씩 한다. 1접이 100개이므로 참 엄청난 숫자이다. 그것을 집 안이나 처마 밑에도 달지만 곶감 타래를 짓거나 슬러브 집인 경우 옥상에 설치한다. 비를 안 맞게 하고 얼지 않게 해야 하고 도르래를 만들기도 한다.
돈을 적지않게 발라야 한다. 감 깎는 기계 박피기(剝皮機)도 350만원이다. 군에서 130만원 보조를 해 주어 220만원을 주고 사는 것이다. 노천리 상부의 이재후 씨는 자기 감만 한 동을 깎아서 매달아 놓았다. 물러 떨어질까 봐 선풍기를 두 대 줄곧 켜 놓고 있었다.
“직접 해야지, 사람 사서 깎으려면 회계가 안 닿아여.”
다른 것도 했느냐고 물었다.
“포도주 100여 병 해 놨시요.”
1병에 1만원 받는다고 하였다. 포도 때에 포도를 2000상자 하여 한 2000만 원 정도 수입을 올렸다.
“꿀은?”
“꿀은 동생이 좀 했지.”
재영씨가 그것도 남의 터에서 6드럼을 했다는 것이다. 1드럼이면 200리터다. 1.8리터 짜리 페트병으로 110병만 잡아도 6드럼이면 660병이 넘는다. 1병에 4만5000원이라고 하였다. 3000만원 돈이다. 옆집 정성기씨나 상부의 박해영 목사도 한 100통씩 하였다. 한 드럼이 20통이니 거기도 한 5드럼씩 한 것이다.
계산을 하는 김에 곶감도 좀 해 보자. 하얀 분이 나온 준시 곶감 35개 내지 40개 넣은 상자 하나에 3만원, 4만원 받는다. 1동이면 1억이 넘는다. 감을 사는 경우 컨테이너(플라스틱 상자) 하나당 크기에 따라 1접 내지 2접 들어가는데 5만원 6만원이다. 그것이 곶감이 됐을 때 위의 계산법에 따르면 줄잡아 3배가 된다. 1동의 감을 사서 깎아 곶감을 하는 경우 반을 잡아도 5천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20마지기 1만3200㎡평에 벼를 재배하는 경우보다 10배가 넘는다.
물론 유통을 시켜야 하는 노력이 따르고 인건비, 상자 값을 제해야 한다. 주먹구구식으로 따진 것인지 모른다. 대충 계산기로 두드려본 것이다. 어떻게 쳐도 적지 않은 수입이다. 부지런히 노력만 하면 농토가 없어도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
농촌도 살만하다는 것이라기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고 허리가 부러지는 일인지 모른다.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박피기가 등장하고 매다는 것도 일일이 실로 묶는 것이 아니고 감꼭지를 꽉 물려 달수 있는 2중, 3중의 고리가 고안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숫자를 늘릴 수 있다. 곶감 타래는 목돈을 만드는 부업 품목 중의 하나다. 어촌의 가두리 양식장처럼 어장이다. 아니 농장이지.
곶감이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리석은 호랑이가 곶감을 자기보다 무서운 존재로 착각하고 도망치는 설화다.
어느 날 밤 호랑이가 마을에 내려와 우는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의 소리를 엿듣는다. 어머니가 “호랑이가 왔다” 하는데도 아이가 계속 울자, 어머니가 다시 “곶감 봐라” 하니 아이가 울음을 그친다. 그러자 호랑이는 곶감이라는 놈이 자기보다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이때 소도둑이 들어왔다가 호랑이를 소로 착각하고 등에 올라탔다. 호랑이는 이놈이 틀림없는 곶감이라고 착각하고 죽을 힘을 다하여 달아났다. 동이 트자 도둑은 호랑이임을 알고 급히 뛰어내리고 호랑이도 이제 살았다 하고 마구 뛰어 달아났다.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돈이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제일이다. 곶감 깎는 얘기가 길어졌다.
가을 일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김장을 하는 일이다. 무 배추를 뽑아 씻고 배추를 절이고 무를 썰고 갓과 파와 마늘 고춧가루 젓갈을 넣고 버무려 담는 김장은 여자들의 일이었다. 남자들은 김장독이나 묻어주고 무 구덩이를 파고 하는 것이었지만 요즘은 시골에서도 다 김치 냉장고에 넣어 거실에 둔다. 물론 재래식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고 그 맛이 사뭇 다른 것은 사실이다. 어떻든 김장하는 날은 온 집안 식구들의 인력을 총동원하고 집합하는 날이며 같이 얼굴을 맞대고 맛을 보는 잔칫날과 같은 분위기다. 김치도 여러 가지이다. 깍두기 총각김치 갓김치 동치미 제대로 하려면 열 가지도 넘는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또 하나의 큰 가을 일이 있었다. 지붕을 이는 것이었다. 짚으로 이엉을 엮어 새로 이는 것으로 가을일을 끝내었다. 그러나 지금은 초가집도 없고 그래서 이엉을 엮는 사람도 없다. 집을 이는 날은 동네 여러 사람들이 동원되고 날도 잘 잡아야 되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하면 안 되고 날이 너무 추워도 힘들었다. 지붕을 말끔하게 새로 이고 용마름을 덮고 내려오면 매운 무국에 막걸리가 기다리고 있다. 이날도 잔칫날이다. 지붕을 이고 나서 눈이 오면 좋다고 한다. 부자가 된다고 하던가.
다른 얘기지만 그의 집은 짚 대신 너와를 올렸는데 새로 해야 될 것 같다. 참나무 껍질 굴피는 천년을 간다고 하는데 이건 10년도 안 되어 썩기 시작한다. 집은 애초에 잘 지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두고두고 고쳐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는 집을 너무 급히 짓고 공사를 단시일 내에 끝내고자 한다. 이태리를 여행하면서 집을 몇 년이고 살아가면서 짓는 것을 보았다. 살아가면서 지어가면서 사는 것이다. 늦었지만 잘 못 된 김에 천천히 고쳐나가려 한다. 엎어진 김에 쉬어서 간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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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감을 깎아 매달아 놓은 곶감타래가 있다. 쏠쏠하게 농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부업이다. 수입도 수입이지만 보기도 좋다. 감을 사서 깎기도 한다. 중부의 남윤근씨는 가게를 하며 농사를 짓고 있는데 집에서 딴 감에다가 1000여만 원 어치 감을 사서 깎아 달았는데 반은 빠졌다고 한다. 사진은 남씨 옥상의 감타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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