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에 스미는 따스한 이야기 하나
올해 출판계의 대표 키워드는 ‘위로와 공감’이라고 한다. 그렇다. 시린 이 계절에는 분명히 ‘위로와 공감’이 필요하다. 게다가 12월이 아닌가?
2011년 한 해, 최선을 다해 살아낸 우리들의 등을 토닥여줄 책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째 딱 마음에 드는 책이 없다.
이런 저런 책을 뒤적이며 고민하던 중에 전광석화처럼 떠오른 작품이 바로 알퐁스 도데의 ‘별’이다.
‘프로방스 지방 어떤 목동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알퐁스 도데의 별은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고, 또 많은 번역서가 나와 있다.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다. 게다가 긴 겨울밤도 짧게 느껴질 만큼,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10년 전 쯤 이 작품을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해 방송했었다. 드라마 시작 전에 짧지만 심도 있게 작품 소개를 했었는데, 그때 이렇게 소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랑이 있습니다. 평생 한 사람의 가슴에서 별처럼 빛나는 사랑, 순수하여서 더욱 아름답고 깨어질 염려조차 없는 그 사랑은 바로 짝사랑입니다.
서정시인의 섬세한 감수성과 작가로서의 풍부한 상상력을 지녔던 알퐁스 도데의 대표작인 ‘별’은 순박한 목동의 청순한 사랑을 담아낸 한 편의 시와 같은 작품입니다.”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작품, 알퐁스 도데의 별의 첫 문장은 평범하다.
“내가 뤼브롱 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의 이야깁니다.”
뤼브롱 산에서 목동으로 일하는 나는 몇 주일이나 사람이라고는 구경도 못한 채 홀로 지낸다.
그런 내게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통로는 보름에 한 번 식량을 가져다주는 농장사람 뿐이다. 꼬마 일꾼이나 노라드 아주머니에게 이런 저런 소식을 묻지만,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름다운 주인집 딸인 스테파네트 아가씨다.
산에 사는 양치기 주제에 스테파네트 아가씨 소식은 왜 묻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지금도 대답할 말이 있다.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고, 스테파네트는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사람들 중에 가장 아름다웠노라고.”
‘그때 나는 스무 살 이었고’ 이 짧은 문장 하나로 목동의 모든 것을 표현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빛나는 스무 살이 아닌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꿈꿀 수 있는 때이니 말이다. 새삼 이 문장에 마음에 와 닿는 것을 보니,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나보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간다.
어느 일요일, 식량이 도착할 때가 훨씬 넘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세 시쯤 되어 뜻밖에도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등장한다. 꼬마 미아로는 앓아누웠고 노라드 아줌마는 휴가를 받아 집에 갔다는 거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바라본다. 사방을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던 아가씨가 이렇게 묻는다.
“그래, 여기서 산단 말이지? 어머…… 가엾기도 해라. 항상 혼자 지내려면 얼마나 쓸쓸할까…… 뭘 하며 시간을 보내니? 무슨 생각을 하며?”
아가씨의 물음에 나는 ‘당신을 생각하며……아가씨.’라고 대답하고 싶은 것을 참는다.
잠시 후 아가씨는 “잘 있어, 목동아.”라는 인사를 남기고 떠난다. 나는 아가씨가 사라진 후에도 나귀 발굽에 채여 굴러 떨어지는 돌멩이 소리를 가슴으로 듣는다. 집으로 돌아갔던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저녁때가 다 되어 물에 홈빡 젖은 채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소나기로 불어난 소르그강에 빠지고 만 것이다. 게다가 날이 어두워져 농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나는 아가씨를 위해 정성껏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오두막 밖으로 나온다. 얼마 후 낯선 곳이라 잠이 오지 않았는지 밖으로 나온 아가씨는 내가 앉아 있는 모닥불 곁으로 온다. 이내 하늘 가득한 별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나, 저렇게 많아! 참 기막히게 아름답구나! 저렇게 많은 별은 생전 처음이야. 넌 저 별들 이름을 아니?”
나는 아가씨에게 별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다가 ‘무엇인가 싸늘하고 보드라운 것이 살며시 내 어깨에 눌리는 감촉’을 느낀다. 아가씨가 졸음에 겨워 내 어깨에 기댄 것이다. 나는 그 잠든 얼굴을 지켜보며 꼬박 밤을 샌다.
“저 숱한 별들 중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작품은 이렇게 끝나지만, 그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 가득 따사로운 사랑의 기운이 넘쳐나는 듯하다.
2011년 한 해를 보내며, 나 자신에게 ‘봄햇살 같은 위로’를 보내고 싶다면 알퐁스 도데의 짧은 소설 ‘별’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도 좋겠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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