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15 격주간 제640호>
<지도현장> ‘4-H’와 ‘프라다’

원 유 태 지도사

11월 첫째 주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는 영화가 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가 바로 그 영화다.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를 조율한 실력파 ‘데이빗 플랭클’ 감독의 작품으로 내용은 세계적 패션잡지 ‘런웨이’의 편집장-악마(?)-의 비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년병이 악마의 무지막지한 요구를 극복해 나가는 에피소드가 들어있다.
그런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4-H’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는 하지만 악마가 될 수도 있고, 그와 반대 개념인 천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열정이 없다면 ‘악마’도 ‘천사’도 아닌 그저 그런 결과가 되어버리긴 하지만….
내 직장이 있는 음성군엔 그 흔한 아파트 한 채 없는 ‘원남면’이 있고, 그곳엔 전교생 78명의 작은 ‘원남초등학교’가 있다. 지난달 실적(?)을 쌓기 위해 ‘원남초등학교’를 포함한 90여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음성동요학교’에서 체험 행사를 치렀다. ‘동요배우기’, ‘농사체험’ 등등 아이들을 위한 깊은 고민 없이 준비한 프로그램이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내 입가에 미소를 돌게 했고, 무엇보다 볶음밥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하기까지 했다.
몇몇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고 장난을 걸었다. 짧은 경험으로 볼 때, 습관이 되어있지 않으면 아이들하고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을 만나면 어김없이 물어보는 학년, 나이, 아버지 직업 등등에서 대화를 시작하여 내 휴대전화에 들어있는 우리 아들 사진을 보여주었고, 유희왕 카드, 심지어 나의 월급까지 대답하여 주고, 그 대가(?)로 아이들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대풍정육점식당’집 아들, ‘새나라 치킨’집 딸, ‘미장원’집 딸, ‘수퍼마켓’집 딸. 모두 5학년이었다. 이 아이들도 도시의 아이들과 같이 방과 후 몇 개의 학원을 다녔고, 도시로 유학을 가고 싶어 하는 아이도 있었고, 계속 이곳에 남아 농사를 짓겠다는 아이도 있었다. 그들은 떡메도 힘차게 쳐 내렸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를 나의 입에 넣어주기도 하였다.
처음 4-H 담당이 되었을 때는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먹을 것 하나도 개성을 표현하는 요즘 아이들에 대해, 배가 불러 그러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렸고, 숫자로 표현되는 실적과 행사 때마다 눌러댄 사진으로 1년을 ‘천사’도 ‘악마’도 아니게 마감하려 하고 있었다.
‘열정’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거창함으로 인식하고, 4-H는 그저 지나가는 업무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열심히 새끼 꼬기를 배우고 다음 어느 만남에서도 내 이름을 반갑게 불러줄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나를 뒤돌아본다.
지금은 우리 아이들을 나의 ‘프라다’로 만들어 보자. 그 후에 내가 ‘악마’ 될지, ‘천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진솔한 ‘흙’속에서 악마가 나올 리야 없지 않은가?
 〈충북 음성군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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