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01 격주간 제639호>
<지도현장> 농촌 이해하는 젊은 세대 육성해야

최 광 영 지도사

월드컵의 열기가 채 가시기 전인 2002년 7월. 나는 수습행정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농촌지도사의 길에 들어섰다. 그렇게 농업기술센터로 출근한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4-H야외교육이 있었다. 그땐 4-H에 대해서도 잘 몰랐을 뿐 아니라 야외교육이 어떤 건지도 몰랐던 때이다. 수습행정원이라 맡고 있던 업무도 없고 해서 일도 배우고 부족한 일손도 도울 겸 2박3일을 야외교육장에서 보냈다.
영농회원들은 학생회원들에게 4-H서약과 노래를 가르치고, 봉화식을 준비하며 봉화줄을 매기 위해 건너편 산에 있는 가장 높은 나무를 겁도 없이 올랐다. 나는 속으로 ‘혹시 떨어져서 다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오히려 회원들은 더 높고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나무를 찾았다. 그렇게 회원들의 땀으로 준비한 봉화식이 끝나고 모든 일정을 마쳤다. 발령받은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야외교육을 같이하게 된 걸 보면 아마 4-H와 인연이 있나보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4-H가 이젠 내 업무가 되고 3대 교육행사인 청소년의 달 행사, 야외교육, 경진대회를 3번씩 치르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행사가 크게 변한 건 없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농회원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봉화식을 멋지게 준비하기 위해 산모기가 득실대는 수풀을 헤치고 산속으로 들어가 봉화줄을 걸고 봉화를 내리기 위해 나무꼭대기에서 몇 시간이 넘도록 기다리던 영농회원들은 이제 회원으로서의 연령을 넘겨 버렸고 나이 때문에 앞장서지 못한다.
그들 중에는 정말 4-H를 사랑하고 아끼는 회원들이 많다. 해외연수를 보내주고, 영농자금을 지원한다고 4-H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순수하게 4-H인과의 교류를 좋아하고 4-H인과의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하자면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좀 우습지만 우리는 그들을 4-H골수분자라 일컫는다. 그런 사람들이 이젠 서서히 나이가 들어 회원으로서 활동을 못하게 되고 영농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지금, 그들이 더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순수하게 4-H를 사랑하는 그들이 더 남아 있어주길 바라지만 그들은 한편으론 자신들의 뒤를 이어줄 후배가 필요하다고 한다.
4-H회의 회원구조는 학생회원이 영농회원보다 10배 이상 많다. 이 많은 학생회원 중 몇% 만이라도 그들의 뒤를 이어 고향에 남아 있어주길 바라지만 어린 학생회원들은 대학 진학이나 직업을 찾아 고향을 떠난다. 그렇게 떠난 회원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몇 년,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른다. 정말 뜻이 있어 고향이 좋고 흙냄새가 좋아 남아 있다하더라도 몇 년 만에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일을 찾아 떠나간다.
이제까지의 4-H육성 목표가 영농후계세대 양성과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고향을 떠나더라도, 농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농업을 이해하고 농촌의 편에 서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기 포천시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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