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5 격주간 제865호>
[시 론]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추는데 4-H인부터 앞장서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덕 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역사문제에 천착하는 사람들은 “지금이 100년 전 구한말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과장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 문제의 심각성을 체험한 사람들에게는 과장이 아니다. 한 나라가 망할 때는 주관적 조건과 객관적 조건이 맞아들어 갈 때이다. 객관적 조건이란 한 나라를 침략하려는 외부세력의 존재이다. 주관적 조건이란 이 침략세력에게 부역하는 내부 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망언했다. ‘역사적으로’라고 말했으므로 한국 사학계가 발칵 뒤집혀 반박해야 하는데 조용하다. 그 망언의 뿌리가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 강점 후 중추원 산하에 ‘조선반도사 편찬위원회’를 만들어서 「조선반도사」를 편찬했다. ‘반도’라는 말 속에 이미 가치기준이 다 들어가 있다. 한국사에서 대륙과 해양을 삭제하고 ‘반도’로 국한시키겠다는 뜻이다. 그 ‘반도’의 북쪽에는 ‘한사군’이란 중국의 식민지가 있었고, 남쪽에는 ‘임나일본부’란 일본의 식민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반도사 편찬위원회 사업은 조선사편수회로 이관되어 1945년 패전 때까지 계속되었다. 전쟁이 2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되면서 일제는 소나무 껍질까지 벗겨 연료로 사용해야 할 정도의 전비부족에 시달렸지만 ‘조선사편수회’ 예산은 1엔도 깎지 않았다.
1945년 일제는 패전했고 한국은 빼앗긴 땅을 되찾았다. 그러나 빼앗긴 역사는 되찾지 못했다.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했던 한국인 학자들이 역사학계를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광복이 분단으로 이어지면서 백남운, 김석형 같은 맑시스트 역사학자들은 북한으로 넘어갔고, 안재홍, 정인보 같은 비타협적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조선사편수회에 부역했던 역사학자들만 남아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해방 후에도 하나뿐인 ‘정설’ 또는 ‘통설’로 만들었다. 전 세계 역사학계에 ‘정설’ 또는 ‘통설’ 따위의 비학문적 용어로 다른 역사관을 공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식민사학자들의 고민은 외형은 해방된 나라에서 “우리는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조선총독부 역사관에 ‘실증주의’라는 허울을 입혀 마치 객관적인 학문을 하는 것처럼 포장했다. 그리고 ‘역사는 역사학자들에게 맡기라’는 논리로 역사학을 독점하고 국민을 우민화시켰다.
한국 식민사학이 ‘한반도 북부=중국 역사강역’이라는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하나뿐인 ‘정설’, ‘통설’로 삼고 있는 것을 본 중국은 2012년 ‘한·중 경계의 역사적 변화(CRS)’라는 자료를 미 상원 조사국에 보냈다. 한사군을 근거로 북한은 중국의 역사영토였다고 주장하는 자료였다. 미국은 이 자료를 한국 정부에 전달하면서 답변을 요구했고, 정부는 동북아역사재단에 이를 맡겼다. 당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서울교대 역사교육과 교수 등과 국민세금으로 미국까지 가서 ‘한사군의 남쪽 한계는 황해도 재령강 연안과 강원도 북부’라면서 황해도~강원도 북부 강역을 중국에 넘겨주고 왔다. 이것이 지금까지 정부의 공식입장이니 북한 유사시에 중국이 북한을 차지하고 “여기는 원래 우리 땅”이라고 우겨도 우리는 할 말이 없다. 시진핑 망언의 배경이다.
임나일본부설도 다시 살아났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를 한반도 남부의 가야라고 최초로 주장한 것은 19세기 중후반 메이지(明治) 시대 일본군 참모본부였다. 가야와 임나가 다르다는 사료는 차고 넘치지만 식민사학자들은 이를 외면하고 단편적인 사료를 왜곡해서 ‘가야=임나’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임나가 외교기관이라는 둥 교역기관이라는 둥 성격 문제로 논점을 회피하면서 고대 일본이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 남부에 거점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역사문제는 역사학자에게 맡기라’는 식민사학자들의 ‘역사의 우민화 전략’이 성공을 거두어 대다수 국민들이 역사에 무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틈에 일본 극우파는 막대한 자금력으로 한국의 학자들을 일본으로 데려가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대어주며 교육시켰고, 지금도 시키고 있다. 이들이 귀국해 각 대학이나 국가기관 등에 자리 잡고 ‘임나=가야설’을 전파하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 천착하는 사람들은 지금 상황이 일진회가 설치던 구한말과 비슷하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단순한 언명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추는데 4-H인부터 앞장서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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