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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격주간 제86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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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환의 고전산책] 시험에 대비하는 자세 |
"묵묵히 공부에 정진하면 시험은 저절로 가벼워진다
自家工夫到後 那邊自輕(자가공부도후 나변자경)"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중에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게 바로 시험이다. 학교에서도 시험을 치르고 학교를 나와 세상에 나아가도 시험을 치러야 한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유학(儒學)에서는 시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에게 시험은 매우 미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사람은 그 목적을 벼슬자리에 두지 않았다. 벼슬자리는 남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며, 학문의 목적이 아니라 학문의 결과였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버렸다. 과거시험으로 사람을 뽑기 때문이다. 아무리 학문이 높고 인품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않으면 벼슬자리로 나아갈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버지나 형들은 아들과 동생에게 학문을 배우고 익히게 하여 과거시험을 통과하도록 가르치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목적이 시험을 잘 보는 것으로 바뀌었고 결국 공부하는 사람들의 문화가 경박해지고 말았다. 물론 과거시험을 통과하여 벼슬자리에 오르지 않고서는 세상에 그 뜻을 펼칠 기회가 없는 게 현실이지만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것의 목적은 벼슬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험에서 합격과 불합격은 하늘의 뜻에 맡겨두고, 그저 열심히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데 주력하라. 조급하게 굴지 않아야 한다.”
율곡의 말이다. 율곡은 아홉 차례나 과거시험을 치러 모두 장원급제했고 그러한 실적을 기반으로 벼슬자리에 올랐다. 그러므로 율곡을 찾아와 가르침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했다. 공부의 목적은 스스로를 바르게 하는 것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사람들은 그저 합격의 비법만을 요구했다. 율곡이 얼마나 난감했을지 상상이 된다.
“과거시험 공부에 얽매여서 진정한 학문을 배우고 익히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핑계일 뿐이다. 옛날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거나 여기저기 품팔이를 다니기도 했다.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어 글을 읽으며 학문을 배우고 익혔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을 보라. 부모를 봉양하기는커녕 부모가 오히려 그들을 뒷바라지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것은 하나도 신경을 쓰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하는데, 그것이 힘들다고 말하는가?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것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고 깨우치는 것은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전의 사람들처럼 농사를 짓지도 않고 공부만 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요즘 사람들은 말로는 과거시험을 준비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하지 않고, 말로는 공부를 한다고 하나 실제로는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누군가 이를 지적하면 ‘나는 공부에 뜻을 두고 있어서 과거시험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나는 시험 준비에 매여서 공부에 힘쓸 수 없다’고 한다. 모두가 거짓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그게 바로 시험을 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름길을 찾아 헤매다 지치지 말고 바른 길로 묵묵히 가라. 그러면 바른 공부가 가능하며 바른 공부가 쌓이면 시험은 저절로 해결된다.”
율곡의 이러한 조언은 아직도 유효하다. 주자도 “시험공부도 공부다. 그러므로 해로운 게 아니다. 다만 오로지 남을 이기기 위해 나아가는 게 해로울 뿐이다. 그러면 시험은 점점 어려운 장벽이 된다. 그러나 묵묵히 공부에 정진하면 시험은 저절로 가벼워진다(自家工夫到後 那邊自輕)”라고 말했다. 시험을 생각하지 말고 실력을 쌓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 시험을 쉽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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