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1 격주간 제864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믿음과 끈기의 결과

"죽음을 각오하고 백성들과 함께 지켜라
與民守之 效死而民弗去(여민수지 효사이민불거)"
- 《맹자(孟子)》 중에서


춘추전국시대의 등(鄧)나라는 약소국이었다. 강대국인 제(齊)나라와 초(楚)나라 사이에 끼어 언제나 그들의 눈치를 보는 신세였다. 초나라와 가까이 지내려 하면 제나라가 그것을 트집 잡아 위협을 가했고 제나라에게 고개를 숙이면 초나라가 그것을 빌미로 화를 냈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있을 때, 맹자가 등나라를 방문했다. 그러자 등나라의 문공(文公)은 맹자를 불러 이렇게 물었다.
“우리 등나라는 초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초나라에 붙어야 안전할까요? 아니면 제나라에 붙는 게 좋을까요?”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약소국의 위태로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맹자는 과연 어떤 해법을 제시했을까? 천하의 맹자도 매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문제에 대한 해법은 제 능력 밖의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꼭 이야기해야 한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연못을 깊이 파고, 성을 높이 쌓은 뒤에 죽음을 각오하고 백성들과 함께 지켜내십시오. 백성들이 떠나지 않는다면 해 볼 만합니다(鑿斯池也 築斯城也 與民守之 效死而民弗去 則是可爲也).”
초나라에 붙는 게 좋은지 제나라에 붙는 게 좋은지를 물었더니 맹자는 백성들에게 붙으라고 조언한 것이다. 방점은 어디에 찍혀 있는가? 연못을 깊이 파고 성을 높이 쌓는 것에 찍혀 있는 게 아니다. ‘백성들과 함께(與民)’에 찍혀 있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면 나라를 지켜낼 수 있다는 뜻이다.
맹자의 이러한 대답은 등나라 문공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맹자의 대답을 들은 후 문공이 재차 묻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제나라에서 우리 등나라 근처에 큰 성을 쌓고 있단 말입니다. 겁이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자 맹자는 역사적인 사례를 들어 자세한 설명을 이어간다.
“주나라 문왕의 할아버지인 태왕이 빈()에 거주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북적(北狄)이 위협하자 가죽과 비단을 주고 개와 말을 바치고 금은보화까지 주면서 고개를 숙였지만 북적은 계속 전쟁을 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이에 태왕은 백성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지만 적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곳 빈()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전쟁을 하면 여러분들이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전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나면 여러분들은 무사할 것이다.’ 그리고 기산(岐山)으로 떠났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태왕을 놓쳐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며 태왕을 따라 모두 기산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태왕의 후손들이 힘을 비축하여 주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최후의 승리자는 누구인가. 땅을 얻은 북적인가 아니면 사람의 마음을 얻은 태왕인가. 태왕은 땅이 아니라 사람을 선택했다. 그리고 태왕의 후손들은 이를 바탕으로 주나라를 건설했다. 맹자는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민심을 얻는다면 패배가 아니라는 뜻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백성들과 함께 지켜라(與民守之 效死而民弗去)”에서 지켜내는 것은 땅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이다. 여론을 따르라는 것이다. 백성들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民弗去)은 땅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 아니다. 마음이 떠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굳건한 믿음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은 이토록 위대하다. 이기고 싶다면 포기하지 말라.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이기게 된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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