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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5 격주간 제8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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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환의 고전산책]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 |
" 거친 돌에 갈아야 단정한 옥이 된다네
他山之石可以攻玉(타산지석가이공옥)
- 《시경(詩經)》 중에서 "
‘타산지석(他山之石)’은 매우 잘 알려진 고사성어(故事成語) 중 하나다.
그러나 ‘가이공옥(可以攻玉)’과 함께 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된다. 거친 돌로 갈아내야 단정한 옥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방점은 어디에 찍혀 있는가. 바로 ‘나(옥)’에게 찍혀 있다. 주변 환경(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옥) 중요하다는 뜻이다.
주변의 다른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 흔히 ‘나는 올바르게 잘 하고 싶은데 주변 상황 때문에…’라는 말을 듣곤 한다.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나’는 뒤로 미루어두고 주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과연 이러한 말은 적절한 것일까? ‘타산지석’에 대한 송나라의 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의 말을 들어보자.
“옥도 돌이다. 다만 일반적인 돌에 비해 부드러운 돌일 뿐이다. 그런데 두 개의 옥을 서로 문지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듬어지지 않는다. 서로 성질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옥은 반드시 거친 돌로 문질러야만 갈려져서 모양을 다듬을 수 있다. 옥을 군자라고 하고 거친 돌을 소인이라고 생각해보자. 군자가 소인과 함께 생활하게 되면 소인으로부터 피해를 당할 수도, 욕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스스로를 더욱 다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결국 도움을 받는 것이 된다. 그렇게 자신을 가다듬으면 아무도 나를 비난할 수 없는 경지, 욕을 할 수 없는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예전에 나랏일을 담당하다가 언론의 비판과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난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처음에는 잠도 오지 않더라구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별 것도 아닌 일을 침소봉대해서 마구 비판을 하고, 왜곡된 정보를 접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손가락질을 하고…. 그런데 시간이 흐른 후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억울할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죠. 원래 언론은 아주 작은 흠집이라도 찾아내는 게 본연의 업무니까요. 그런 것이 있어야 사람들은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자신을 더욱 단정히 가다듬게 되는 것이죠. 건강한 사회는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아니라 ‘타산지옥(他山之玉)’만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로 칭찬이나 해주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 감싸주기만 해서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돌과 옥이 서로 뒤섞여 살아가는 것이다.
비난이나 비판이 다가오면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단 맞서 싸우려고 하거나, 그것을 막거나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왜 그런 비난을 하는지, 그 비판의 근거가 무엇인지 귀를 크게 열고 들어야 한다. 그리고 아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빌미를 준 게 있다면 그것을 고쳐나가야 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비슷한 의미의 내용이 많이 나온다. “나를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경계하라. 그러나 나의 단점을 지적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스승으로 생각하라(道吾善者 是吾賊 道吾惡者 是吾師).”
피하거나 외면하지 말라. 거칠게 맞서 싸우지도 말라. 중요한 것은 나를 가다듬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찌해야 할까? 다시 ‘명심보감(明心寶鑑)’을 펼쳐보자.
“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태연하게 행동하며 일체 대응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허공의 불꽃처럼 혼자 타오르다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욕을 듣고 비난을 당하는 나의 마음은 텅 비어 청명하고 맑은 하늘이지만, 욕을 하며 비난하는 상대방은 어둡고 혼란스럽기만 할 것이다(我若被人罵 佯聾不分說 譬如火燒空 不救自然滅 我心等虛空 摠爾飜脣舌).”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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