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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5 격주간 제7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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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착한나들이] 새해, 감일출을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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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일출보다 오래 지상에 떠 있을 주홍빛 감들. |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러 갔다. 어두울 때 일어나 서울에서 가장 빨리 해가 뜬다는 아차산으로 향했다. 산 입구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해마다 4만 명이 모인다는 말은 들었지만 상상 밖의 인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발걸음에 밀려 산으로 올라갔다.
해맞이 광장에 도착하니 산은 온통 사람들로 뒤덮여 있었다. 내가 겨우 뒤쪽에 자리를 잡자 이내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손톱만큼 보이자 사람들은 환호하며 일시에 핸드폰을 똑같이 위로 올리고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내 앞쪽 남자는 배터리가 다 됐다며 안절부절못한다. 일출을 보러 온 건지 사진을 찍으러 온 건지 모를 지경이다.
장자는 말했다. 기계를 써 본 자는 반드시 기계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기계에 사로잡히면 뭔가를 꾀하려는 마음이 생겨 순수하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정서가 불안해지고 정서가 불안하면 도가 깃들지 않는다고. 기계는 인간의 발목을 잡는 덫이며 그 덫을 스스로 만드는 게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하지만 길을 잃은 인간은 행복을 꿈꾸며 열심히 불행을 향해 달려간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에 몰입하고 있는 획일적인 풍경이 우습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핸드폰을 꺼내려다 그만뒀다. 나는 깊이 호흡하며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눈으로 바라봤다. 사람들이 렌즈로 눈을 가리고 있을 때 나는 온전히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다. 그 붉고 장엄한 숨소리는 프레임 없이 통째로 내 안으로 생생하게 들어왔다. 나는 울컥하는 전율을 느끼며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나는 소원을 빌었다. ‘해님 감사합니다. 올해도 가난하고 추운 사람들과 함께 해 주세요.’ 그것은 핸드폰을 통과하지 않고 다이렉트로 교감한 자연에 대한 감동이었다.
일출은 사랑처럼 보일 듯 말 듯 할 때가 절정이다. 떠오르는 시간은 짧고 아름다운 순간은 찰나다. 태양이 제 모습을 다 드러내고 나면 사람들은 하산하기 바쁘다. 하산은 내리막길이라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넘어질까 두려웠다. 친구나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지기 다반사. 나는 그 북새통을 피해 길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 걷기 시작했다. 나는 겨울나무를 좋아한다. 겨울나무는 잘나거나 못나거나 모두 비슷해서 평화롭다.
나는 나무 사이로 걸어가다 멈추었다. 새 한 마리가 저만치 바닥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쪼아 먹고 있었다. 이 겨울에 무얼 먹고 있을까? 살금살금 다가가니 직박구리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순간 놀랐다. 나무 밑에 쌓여 있는 홍시를 보았기 때문이다. 새들을 걱정한 발걸음 하나가 어린 것들 돌보듯 산 속에 감을 가져다놓은 것이다. 그 다정한 마음에 눈이 환해졌다. 환해진 내 눈에 홍시는 막 떠오르는 일출로 보였다. 산 하나가 환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어느 일출보다 오래 지상에 떠있을 주홍빛 감들. 점점 낮아지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근원적인 행복은 생명을 가진 존재에 대한 우호적인 관심이 아닐까?’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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