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흥4-H’의 산증인인 위근환 회장은‘장흥군4-H 50년 기념탑’건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
위 근 환 회장 (전남 장흥군4-H본부)
“가난하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바라는 모든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45년 4-H활동을 통해 몸에 밴 ‘근면·성실’을 삶의 근본 정신으로 삼고 있는 위근환 장흥군4-H본부 회장(61·전남 장흥군 관산읍 당월길)을 찾았다.
“열여섯 살 때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육남매의 장남으로 조모님과 어머님 등 여덟 식구를 책임 져야 하는 어려운 시기를 만났습니다.”라는 위근환 회장.
“아버님이 남기고 가신 논 2000㎡에 김발 장비를 물려받아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고 있던 열여덟 살 때, 4-H선배 한 명이 찾아와 마을 친구들을 규합하여‘4-H구락부’를 조직해 보라고 권유했죠.”라며 4-H에 입문하게 된 사연을 풀어놓았다.
4-H로 어려운 역경 이겨내
이후 장흥군4-H연합회 남부지구연합회장과 총무를 역임하며 현역 회원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 위근환 회장은, 2011년부터 장흥군4-H본부회장을 맡아 지역4-H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군4-H본부를 전남 시군 중에서 최초로 법인화 하는 것에 솔선수범한 위근환 회장은, 매년 군청으로부터 운영비 750만원을 지원받아 지역4-H 활동에 알토란 같이 활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장흥군 4-H활동 지원 조례’ 제정에 앞장서 지역4-H 활성화에 주춧돌을 놓은 위근환 회장은, 이를 밑거름으로 삼아‘장흥군4-H본부 사무실’을 개소하고,‘한국4-H신문 장흥군지국’을 개설하는데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공로로 지난해 한국4-H본부에서 주최한 제15회 한국4-H대상 시상식 지도자부문에서 영예의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을 수상했다.
위근환 회장은 4-H활동을 펼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1970년대 초 군야영대회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밤에 장대비가 계속 내리는 바람에 임원들이 솔선하여 텐트 옆으로 배수로를 만들어 빗물을 흘려보냈지만, 면으로 된 텐트는 빗물이 줄줄 새고 짚으로 엮은 멍석자리는 물에 젖어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죠.”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잠자리는 비록 불편했어도 200명이 넘는 청년들이 밤새 노래를 부르며, 4-H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이야기꽃을 피웠던 야영대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단다.
이 시절 습득한 봉사정신, 협동심, 자주성, 리더십 등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자산이 됐다고.
4-H신문 확대 보급에 앞장서
|
지금의 위근환 회장이 있기까지 아낌없는 내조를 펼치며 든든한 반려자가 돼 준 아내 이정금 씨(사진 오른쪽)와 함께. |
요즘 부쩍‘장흥4-H’ 활성화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는 위근환 회장은, 특히 한국4-H신문 확대 보급의 일환으로 올해 11부인 개별구독 부수를 150부까지 늘리는데 열성을 다하고 있었다.
한편 본업인 농사에도 근면·성실함을 발휘한 위근환 회장은 “평범한 농업인들은 벼 이앙 시기를 하지 전후 3일로 보았지만, 저는 그보다 1개월 앞당겨 이앙했습니다. 또한 지역에서 벼 신품종을 맨 처음 재배하여 종자를 보급하기도 했습니다.”라며 강한 자긍심을 드러냈다.
“가난하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바라는 꿈을 모두 이룰 수 있습니다.”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위근환 회장.
‘장흥4-H호(號)’의 항해사 역할을 든든하게 수행하고 있는 위근환 회장의 더욱 잔잔한 앞길을 기대해본다.
〈정호주 기자 skyzoo74@4-h.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