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15 격주간 제785호>
[이 달의 착한나들이] 막히는 만큼 시원해지는 피서
정갈한 좌식 책상과 방석, 그리고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푸른 세상. 나는 그 방 마루에 앉아 언니가 세상을 품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투덜거렸다. 세월호 때문에 답답한데 한국이 월드컵에서까지 져 더 덥고 짜증이 난다고 했다. 누가 우리의 막힌 마음을 확 뚫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한 사람이 떠올랐다.
보통 피서하면 바다나 산이 떠오르지만 나는 03번 마을버스가 떠오른다. 그리고 밝게 웃는 여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강남 신사동 농협 앞에서 옥수수를 쪄서 팔던 언니다. 한여름 땡볕에 옥수수를 찌니 얼마나 더웠겠는가? 한낮엔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턱 막혀서 죽을 지경이더란다. 그래서 생각해 낸 피서 법. 마침 농협 앞은 03번 버스 종점이다. 그 버스는 논현, 강남, 서초동을 경유해 신사동으로 다시 돌아오는 버스였다. 언니는 그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동안 피서를 떠난다고 했다. 팔던 옥수수를 보자기에 싸서 아이처럼 데리고 간다고 했다. 버스 안은 에어컨이 있어 옥수수도 시원하게 피서를 할 수 있다는 것. 종점이라 앉을 자리 있지, 운전기사 있지, 기름 값 안 들지, 돈 천 원에 시내 구경하고 오고 싶은 곳으로 오니 이보다 더 좋은 피서가 없단다.
버스도 우리 인생처럼 오르막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풍경도 길에 따라 변한다고 한다. 시원한 버스 안에서 때론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도 하고 느긋하게 창밖을 구경하다 보면 사람이 보인단다. 길에 엎드려 구걸하는 사람, 급하게 달리는 응급차도 보인단다. 그럴 때마다 감사한다는 그녀. 차가 막히면 사람들은 짜증을 내도 그녀는 막히는 만큼 시원함도 길어진다고. 그녀는 여름내 그렇게 피서를 떠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단다.
그 언니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이다. 얼마 전 언니는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며 만나자고 했다. 충무로에서 만났는데 그 언니는 나를 데리고 남산 한옥마을로 갔다. 언니는 한옥마을을 보여주면서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매일 집으로 가는 길에 들러 쉬어가는 별장 같은 곳이라고. 그곳엔 고래등 같은 한옥이 다섯 채가 있는데 방이며 부엌이며 기와지붕까지 설명해 주는 열성에 언니가 정말 이곳을 사랑한다는 걸 느꼈다. 언니는 내게 맘에 드는 집을 골라보라고 했다. 그래서 설레며 별장 한 채를 골랐다. 그 집은 청사초롱이 걸리고 유난히 마루가 반짝이는 집이었다. 난 그 집의 작은 방에 완전 매료되었다. 정갈한 좌식 책상과 방석, 그리고 창문으로 보이는 푸른 세상. 나는 그 방 마루에 앉아 언니가 세상을 품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나라에서 관리해주니 돈도 안 들고 언제든지 놀다 가니 행복하단다.
현실적으로 60억 인구의 절반은 하루 2달러로 살아간다. 아프리카에선 가물어 오줌을 받아먹기도 하고 물에 잠겨 사라진 섬나라도 있다. 언니는 한옥마을 숲 속 정자와 맑은 냇물도 자기 것이니 또 놀러 오란다. 진정한 부란 무엇일까? 행복한 사람은 감사를 아는 사람이고 감사하면 신이 가슴에 들어온다고 한다. 한국이 싫어 외국으로 간 친구도 있지만 멀리 가도 누가 감사를 대신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웃음은 웃는 자의 것이고 복은 누리는 자의 것. 한옥마을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올 여름엔 별장에서 나만의 피서를 즐겨야겠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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