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15 격주간 제759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바로 여기를 천국으로 만들어라

"하지 않는 게 있어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
人有不爲也 而後可以有爲(인유불위야 이후가이유위)
- 《맹자(孟子)》 중에서"


공자는 “어떤 일을 할 때, 반드시 해내겠다거나 꼭 성공시키겠다고 의지를 다지지 말라.”고 했다. 왜 그토록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말을 한 것일까.
억지로 이루려 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하라는 뜻이다. 공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농업이 존재한다. 농업이 생계수단인 사람들은 모든 것을 시기에 따라 순리대로 할 뿐 억지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흉년이 들더라도 풍년이 든 곳을 찾아 떠나지 않는다. 계속 그곳에 머문다. 씨앗 몇 톨만 있으면 다음 농사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풍년이 들도록 노력한다.
  소와 양을 기르는 목축업은 다르다. 많은 소와 양을 기르기 위해서는 목초지가 필요하다. 숲이 우거진 산은 필요 없다. 그래서 울창한 숲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불타버린 산에서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래야만 소와 양을 몰고 가서 먹이기 좋다. 시야가 툭 트이니 관리도 용이하다. 그런데 소와 양이 마구 풀을 뜯어먹으니 결국 황무지가 되고 만다. 그러면 다른 곳을 찾아 옮겨가야 한다. 전염병이 돌아 소와 양들이 죽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목장을 습격하여 소와 양들을 빼앗아 와야 한다. 전투기술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 유럽인들은 왜 세계 각지로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떠났는가. 목축업으로 산과 들이 황폐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왜 호전적인가. 빼앗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농업은 그렇지 않다. 내가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결과가 나온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는다. 나를 가다듬을 뿐이다. 다른 곳으로 갈 이유가 없다.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떠나지 않는다. 기름진 땅? 지금 이 땅을 기름지게 만들면 된다. 유학은 천국을 향하지 않는다. 여기를 천국으로 만들면 된다. 유학은 어딘가를 향해 떠나지도 않는다. 내 마음을 크고 넓게 만들 뿐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특정한 어느 곳이 아니라 모든 곳에 도달하게 된다.
서양의 근대문명이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정하여 그곳으로 전진하는 것이라면, 동양의 유학은 나를 크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그곳과 연결되게 만드는 것이다. 서양의 근대문명이 직선이라면 동양의 유학은 둥근 공이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이 서울이고 가고자 하는 곳이 부산이라고 하자. 서양의 근대문명은 서울에서 출발하여 400km 떨어진 부산으로 나의 위치를 옮긴다. 중간에 나를 누군가 가로막으면 싸워 이겨야 한다.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 의지를 다져야 부산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동양의 유학은 좀 다르다. 현재의 위치에서 나를 크게 만든다. 스스로 반지름이 400km 정도의 공이 되는 것이다. 부산하고만 연결되는 게 아니라 반경 400km 내에 있는 모든 것과 연결된다. 부산이 나에게 포함될 뿐이다. 어디를 향하는가. 모든 곳을 향한다.
  이제 공자의 말이 조금 이해가 되는가. 왜 억지로 노력하지 말라고 했는지 생각해보라. 애초에 부산이라는 목적지를 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나를 조금씩 키워 가면 그만이다. 점점 나를 크게 키우면 하늘 끝까지, 우주 전체에 가득하게 된다. 그런 상태가 바로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다.
맹자가 “하지 않는 게 있어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다. 억지로 욕심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으라는 뜻이다. 그러니 무엇을 고집하고 무엇을 의도하겠는가. 유학의 목적지는 특정한 어느 곳이 아니라 우주 전체인데. 그렇기에 어디로 가지 않아도 된다. 다 통한다. 구질구질한 목적지도 없다.
여름이면 너도 나도 산과 바다를 향해 떠난다.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지내다 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곳에서 머물다가 왔다고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와서 하는 말은 비슷하다. “아이고, 집이 최고다!” 그렇게 말할 것을 왜 떠났냐고 다그칠 일은 아니다. 집을 떠나봐야 집이 편한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이 최근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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