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01 격주간 제758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변화하기 위해 공자가 끊어버린 네 가지
"의도를 버려라, 고집하지 마라
毋意, 毋必, 毋固, 毋我(무의 무필 무고 무아)
- 《논어(論語)》 중에서"


흔히 유학(儒學)이라고 하면 제사지내는 방법이나 장례 치르는 방법을 머리에 떠올린다. 이것은 예전에도 그랬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도 그런 비판은 존재했다. 당시 제나라를 다스리던 경공이 공자를 곁에 두고 함께 정치를 하려고 했다. 그러자 제나라 재상으로 있던 안영은 이에 반대한다.
“공자와 그 제자들은 너무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어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너무 장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장례를 크게 치르는 것이 나라에 널리 퍼지면 경제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므로 가까이 두지 마십시오.”
  결국 제나라 경공은 공자를 포기한다. 안영은 중국 역사상 몇 안 되는 명재상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공자도 그의 능력을 칭찬했을 정도다. 그렇기에 안영이 없는 말을 지어냈다고, 공자가 있으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울까봐 공자를 비난했다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또 다른 오류가 될 수도 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역사가 사마천도 ‘사기’에서 안영에 대해 “만일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말채찍을 잡고 그의 수레를 몰더라도 큰 영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더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러므로 공자에 대한 안영의 비판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안영이 말한 세 가지 단점, 너무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는 것과 장례에 대한 집착 그리고 말만 앞세운다는 지적은 오늘날 유학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에 불과하다.
달을 가리키는 데 손가락만을 본 것이기 때문이다. ‘논어’에는 ‘공자가 끊어버린 네 가지’가 나온다. 흔히 이것을 ‘자절사(子絶四)’라고 부른다.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가 그것이다. 개인적인 의도가 없고, 반드시 이루어내려고 무리하지도 않으며, 고집하지도 않고, 자신만을 내세우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때에 따라 상황에 적절히 하라.’고 시중(時中)을 강조한다. 그런데 안영은 왜, 그리고 우리들은 왜 공자를 오해하는 것일까. 그는 고집하지도 않고 억지를 부리지도 않았는데?
  사실 공자가 남긴 말을 살펴보면 너무 짧다. 그래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부연설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맹자의 설명은 공자에 비해 좀 더 길고, 주자는 맹자에 비해 더 길고 상세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한자의 역사를 들어 설명한다. 한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글자의 수가 증가한다. BC 551년에 태어나 BC 479년에 죽은 공자가 살았던 시기에는 단어 수가 몇 개 되지 않았을 것이다. BC 372년에 태어나 BC 289년에 죽은 맹자가 살았던 시기에는 단어의 수가 공자 때보다 좀 더 증가했고, 1130년에 태어나 1200년에 세상을 떠난 주자가 살았던 시기의 단어 수는 맹자가 살았던 시기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났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길게 설명하려고 해도 설명할 수 있는 글자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여러 사람들의 비판 속에서 그 논리와 철학이 더욱 정밀하고 세련되게 가다듬어진 것도 원인일 것이다. 좌우지간 안영의 비판과 달리 공자는 의도하는 바도 없었고 고집도 부리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모습이 행정의 달인이자 정치의 달인이었던 안영에게는 답답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근대 이후 유학이 퇴물 취급을 받은 이유도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해보자. 의도가 없다고? 목적지를 정하고 열심히 나아가지 않는다고? 이건 게으름이 아니냐?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근대문명은 지도와 함께 한다. 지도 위에 현재의 위치와 목적지를 정하고 자를 대고 직선을 긋는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나아간다. 중간에 가로막는 게 있으면 싸워서 이긴다. 그리고 성취해낸다. 그런데 공자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한다. 가로막는 게 있으면 멀리 돌아서 간다. 이러니 근대문명과 불화할 수밖에 없다.
공자는 왜 이토록 무기력하게, 어떻게 보면 한심한 말을 했을까. 그러면서 왜 장례나 제사만을 강조했을까. 다음 회에서 그 이유를 명확하게 밝혀보자.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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