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1 월간 제751호>
[4-H인의 필독서] 김용택 ‘사람’
‘사람’으로 마음 가득 행복 누리는 새해가 되길

‘새해’라는 말을 들으면 먹장구름을 뚫고 땅위로 다리를 뻗은 힘찬 햇살줄기가 떠오른다. 새해는 막힌 것을 걷어내는 힘을 지녔다.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떠오르는 새로운 해, 새해는 그래서 희망이다. 새해, 새날이 밝았다. 2013년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새해지만, 그래도 새해는 할머니 품처럼 따뜻하고, 아랫목에 옹기종기 발바닥을 대고 앉은 식구들처럼 행복하다. 마음 가득 뿌듯함이 차오르는 새해에는 온기가 느껴지는 책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바로 ‘사람’(푸르메 펴냄)이다.
‘사람’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산문집이다. 이 책에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온 사람들의 진솔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 표지를 넘겨 처음 만나게 되는 지은이의 말, 첫 줄에 저자는 ‘사람, 이라고 쓰고 나니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고 혼란스럽다’고 밝히고 있다. 어쩐 일인지 생각이 복잡해지고 ‘글길’이 꽉 막혀서 곤혹스럽고 난감한 마음으로 책을 엮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친구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내 친구 사채. 그를 생각하면 나는 눈물이 앞선다. 한동안 내 외로움을 달래준 사람은 사채였다. 그는 농부다. 우리 시대의 농부이자 그가 곧 우리 농촌이요 우리 농업이다. 그의 몸부림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의 농민들의 몸부림이다. 그는 죽어서도 나의 친구일 것이다.”
시인인 저자는 사채를 위해 시를 쓰기도 했다.
“서울에서 돈 못 벌고 / 중동을 다녀와도 어쩐지 우리는 못 산다며 / 첩첩산중으로 못난 여자 데리고 / 검은 염소 몇 마리 끌고 돌아왔지. / 그대는 누구인가 / 내 친구. / 소주 몇 잔 거나하게 걸치고 / 강길을 홀로 걷는 그대는 내 친구.” - 김용택 ‘섬진강8’ 일부
평생을 함께 해온 친구만큼 소중한 ‘사람’이 또 있다. 저자가 가르친 마암분교 어린이들이다. 저자는 이 어린이들과 함께 시를 쓰며 인생을 꾸렸다. 아이들이 없는 빈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저자는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내 인생을 저 운동장 속에서 다 지냈구나. 내 인생을 저기에다 쏟았구나.’ 그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배웠다고 고백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가르치며 내 삶을 반성하거나 자신을 고치지 않고, 또 새로이 배우지 않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라고.
어느 봄, 벚꽃이 날리는 운동장에서 저자의 제자들이 쓴 시를 몇 편 담아본다.
“향기로운 꽃 / 누굴 주고 싶어 / 이쁘게 피었을까 / 여러사람에게 / 사랑을 주고 싶어 피었었을까 / 나도 꽃을 좋아한다 / 아아 나에게도 꽃을 줄까?” - ‘꽃’ 전문, 은미
“오늘은 / 언니들이랑 / 뒷산에 / 갔다. / 오늘은 / 뒷산에 / 고사리가 / 없었다. / 고사리는 먹는 거다.” - ‘뒷산에서’ 전문, 다솔
아이들이 도화지 가득 봄의 풍경을 담는 동안 저자도 시를 썼다. 바로 이런 시를.
“너를 만나려고 /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 이 길을 / 나는 왔다 / 보아라 / 나는 네 앞에서만 / 이렇게 나를 그린다” - 김용택 ‘꽃잎’ 전문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이야기가 있다. 바로 가족 이야기다. 가족은 피붙이의 끈끈함으로 서로 부대끼며 사람을 사람됨으로 이끈다. 집집마다 식구가 많았던 시골 동네에서도 특히 그의 집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책속에 일부를 읽어본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에 거지도 많았고, 보따리 장사들도 많았다. 거지들이 밥때 우리집을 찾아오면, 어머님은 늘 아버지와 우리들이 먹는 밥상으로 거지를 모셔서 함께 밥을 먹게 했다. 그 일은 우리 동네에 거지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말 못하는 짐승, 이름 모를 풀꽃에게도 정성을 쏟으며 살아온 어머니의 가르침은 저자가 어른이 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어머님은 지금도 나에게 “용택아,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고 하시며 나의 삶을 타이르신다.…(중략)…어머님은 학교 공부를 하시지 않아 글자를 모른다. 글자를 몰라도 어머님이 사시는 모습을 보면 하나도 세상에 부끄럽지 않아 보인다. 늘 같이 나누어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어울려 사는 우리 어머니들의 사는 모습 앞에 내 공부와 글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인생의 어느 순간, 그 어떤 사람도 다 소중하고 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가끔은 잊고 사는 우리에게 김용택 시인은 말한다. “그곳에 우리들의 슬프고도 기쁜 인생이 있다.”고.
우리들의 슬프고도 기쁜 인생을 때로는 힘차게, 때로는 힘들게 살아내야 하는 2013년 새해, ‘사람’을 만나, ‘사람’으로 마음에 가득 찬 행복, 누리길 기대해본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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