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01 월간 제750호>
매화골 통신 (33) 만나면 인사가 건강 얘기다
-유언도 써 보며-    이 동 희 / 소설가

"메모장에다 유언을 써서 다듬고 있다.
쓰고 지우고 지우고 쓰고 한다.
마지막 발표하는 글이 될 것이기에 신경이 씐다."

언제부터인가 죽음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삶의 얘기 살아가는 얘기보다 많이 한다는 것이다. 죽음이 보인다느니, 내세가 있느니 없느니 어떠니 말하는 빈도수가 많아지고 유언을 써 보기도 한다.
누가 기록을 하는 메모장에다 유언을 써서 다듬고 있다. 글을 써서 발표하기 전에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다듬고 고치듯이 쓰고 지우고 지우고 쓰고 한다. 작품은 아니라 하더라도 마지막 발표하는 글 마지막 그의 모습이 될 것이기에 신경이 쓰인다.
거기에 이렇게 되어 있다. 내가 죽으면 가족 형제에게만 알린다. 시신은 어디-연고가 있는 대학병원을 지정해 두었다-에다 기증한다. 시신을 다 사용하고 어느 시기 화장하여 유골을 보내주면 아버지 어머니 묘 아래 두 형들의 묘 앞에 그의 묫자리로 정하여 둔 곳 주변의 나무에 뿌린다. 수목장이다. 이곳이 우리 가족 대대의 공동 수목장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몇 가지 더 있다. 그것을 변호사 누구-그것도 지정을 해 두었는데 아직 말은 안 하고 있다-에게 1부를 맡긴다고 되어 있고 계속 다듬고 보완하고 있다.
나중에 상의를 해야 되겠지만 가족들이 반대할 수도 있고 또 그 자신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변호사에게 맡기고 공증을 해 두고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기보다 죽음과 친숙해지려는 노력인 것이었다. 어쩌면 그럼으로 해서 죽음을 늦추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농 비슷하게 하는 말로 방귀가 잦으면 뭐가 어떻다고 하였는데 그러나 아직은 아닌 것 같이 생각된다. 120까지 산다고 하고 99 88 어떻고 하는데 그러자면 20년 30년도 더 있어야 된다. 좌우간 아무 근거도 없기는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아는 사람들 만나면 인사가 건강 얘기이다. 얼마 전만 해도 밥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그것이 관심사였던 것이다. 진지 잡수셨어요? 아침 드셨어요? 점심 어떡하셨어요? 저녁은요? 그랬다. 시골 사람들, 아침 저녁 만나는 사람들이 하는 인사이기도 하지만 살기가 힘들고 밥먹기도 어렵던 때 모든 사람의 인사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뭘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가 아니고 건강에 대해서 묻는다. 건강하시지? 건강해요? 그러며 또 건강이 제일이라고 하였다. 그것을 염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냥 인사로 하는 말이다. 편지를 쓰거나 글로 안부를 물을 때도 약방의 감초처럼 건강을 묻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말한다.
“건강은 모르겠고 병은 없는 것 같애요.”
말로 하거나 글로 하거나 그런다.
정말로 병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실치 않다. 솔직히 정확한 것은 잘 모른다. 2년마다 의료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검진 통지가 올 때마다 내시경으로 위나 대장 등을 보고 괜찮다고 해서 그렇게 알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데보다 매일 쌀 썩은 물을 들어붓고 있는 그 두 곳이 제일 걱정이다. 아침에 속이 쓰리고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낄 때 불안하기 말할 수 없지만 의사는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 기계에 의존해서만 말하고 느낌으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제일 혹사하는 것이 간인데 간을 들여다보자 소리는 않고 피검사를 하면 상태를 알 수 있는 모양이다. 그것도 잘 모르긴 하지만.
내시경은 다른 검사보다 속 시원한 데가 있다. 모니터를 같이 보고 있기도 하지만 상태가 괜찮으면 의사는, ‘뭐. 괜찮네. 깨끗하네.’ 혼잣말처럼 말하기도 하고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얘기를 해 주기도 한다. 아마 상태가 좋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의사가 아무 말도 않고 있으면 불안하고 답답하고 순간적으로 별 생각이 다 든다.
한번은 국립 암센터에서 검진을 받은 적이 있다. 보다 정밀한 검진을 받아보고 싶은 생각에서 시간과 교통이 불편함을 무릅쓰고 그렇게 한 것이고 예약도 한 달도 더 전에 미리 하였다. 그런데 하나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거기서도 대장암 검진은 대변 검사 결과를 가지고 한다고 했고 처음부터 내시경 검사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위 내시경을 검사하는 의사는 아주 새파란 신출이었다. 인턴은 아니겠고 갓 수련의가 된 것 같았다. 나이가 젊고 수련의가 어떻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것이 싫으면 특진을 받으면 될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의사가 중간에 뭐라고 말하지 않아 불안해서 어떠냐고 묻는 그에게 말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내시경 검사 소견을 말하는 자리에서 다른 얘기만 하고 있어서 ‘괜찮으냐. 안 괜찮으냐.’부터 물은 것이다.
“위가 많이 낡았네요.” 
“그래요? 제가 술을 많이 해서 그런가 보지요.”
“그래도 그렇지 너무 낡았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늙어서 그런가보지요. 그래 괜찮은가요?”
그가 다시 물었다.
“괜찮지 않지요.”
그는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불안하기도 했지만 심히 불쾌했다.
의사의 소견을 종합적으로 적은 우편물이 얼마 후 왔고 그런 기분은 오래도록 가셔지지 않아 자리가 될 때마다 여러 사람에게 얘기를 하였다. 도대체 그런 표현밖에 없겠는가. 다른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얘기가 얼마든지 있지 않겠는가. 국어교육을 잘 못 받아 그런 건 아닌가. 그는 의대생 국어시간에는 이무영의 소설 ‘제1과 제1장’의 흙냄새 된장내와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비교해 써보라고 하였다. 대개 답을 쓰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늘 고리타분한 문제를 끼워 넣었었다.
2년에 한번 내시경 검사를 할 때마다 선고를 기다리는 것 같다. 사형이냐 아니냐 참으로 절박한 순간이었다. 대개는 2년을 못 기다리고 그 안에 검사를 자청하기도 한다.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씩은 봐야 된다고도 한다. 그 1년 반 안에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정확한 것인지 모르지만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가냘픈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농가월령가를 얘기하면서 와병중이라고 하던 친구가 별세하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에 갔었다. 여러 지인들이 고인의 호탕한 술 얘기를 회고하였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노선생과는 미진한 내세에 대한 토론을 이메일로 하기로 했다.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듣기 쉽게 간단명료하게 적되 그 근거를 어디 몇 장 몇 절에 있는 것을 대라고 하였다. O.K. 그러겠다고 하였다. 그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고 하였다.
“문제는….”
“문제는 내가 알아요.”
내세고 천국이고 그것을 스스로 믿느냐 하는 것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고 오곡백과를 거두는 들판에서 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결실을 맺으려 한다. 30여 작가로 구성된 영동문인협회에서는 지난 달 말일 영동문화원강당에서 문학의 향연을 열고 시 수필 소설 낭송회를 가졌다. 군수 교육장이 축사를 하고 감나무 가로수에 깃든 꿈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색소폰 연주도 있었고 군내 초중고 백일장 시상식도 있었다. 밤이라 행사를 마치고 찍은 사진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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