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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1 월간 제75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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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H인의 필독서]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
담담하게 읊조리는 소박한 일상과 추억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주먹만한 함박눈이 내려 세상을 하얗게 덮었으면 싶었다. 길도 길이 아니고 산도 산이 아닐 수 있게.
그런데 비가 내린다. 아마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되리라.
올 한 해 가장 많이 한 말은 “바쁘다.”였다. 내 평생 가장 바빴던 한 해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타고난 일복을 자랑하며 살아왔지만, 이 정도라면 복이 아니라 고생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 내가 죽는 소리를 하면 사람들은 말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 행복으로 여겨라.’ 그러면 나는 고개를 숙이고 또 다시 컴퓨터 앞에 매달려 방송원고를 써댔다. 그런 날들을 보내다 문득 멈춰 서서 보니, 어느새 12월이다.
2012년 12월. 한 해를 정리하면서 읽기 좋은 책을 추천하고 싶었다. 책을 잔뜩 쌓아놓고 고르기를 거듭하는데, 이 한 권에 눈길과 마음이 머문다.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이레 펴냄)이다. 함민복 시인을 떠올리면 강화도가 먼저 생각난다. 그리고 가난이라는 단어도.
‘눈물은 왜 짠가’는 시인의 일상과 추억을 담고 있는 산문집이다. 한마디로 담담하고 소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장에 이르면, 가슴을 툭 건드려서 눈물샘을 열고야 만다. 사는 게 어찌 이리도 힘든가, 어쩌자고 이처럼 고단하기만 할까, 마음이 아파온다. 하지만 시인은 가난을 겁내지 않는다. 오히려 무심하게, 씩씩하게 자신의 몫인 가난을 타인인 양 바라보고 있다.
시인은 가세가 기울어서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 댁에 모셔다드린다. 가는 길에 어머니는 시간이 있으니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며 시인을 이끌었다.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온 어머니는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왔다. 그런 어머니가 고깃국을 찾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기에 시인은 마음이 아렸다. 어머니는 설렁탕 국물을 댓 숟가락 뜨다가 주인을 불러서 설렁탕에 소금을 많이 풀어 짜니 국물을 더 달라고 한다. 주인은 흔쾌히 국물을 더 주었고 어머니는 주인 몰래, 시인의 뚝배기에 국물을 부어준다. 그때의 심정을 시인은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중략)…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문장을 읽으면 마주 앉아 설렁탕을 먹는 모자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특별할 것 없는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하고 말할 정도로 평범한 한 장면이다. 하지만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또 이런 쓸쓸한 구절도 있다.
“혼자 산지 오래되었다.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혼자 산지 오래된 어머니도 그러하리라. 내가 밥상머리에서 늘 어머니를 생각하듯 어머니도 나를 생각하실 것이다. 혼자 먹는 밥상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차려진다.”
이렇게 가난하고 외로운 삶이지만 시인은 그것을 아파하거나 힘들어 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시인의 마음에 ‘어머니’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실려 있는 글 곳곳에서 시인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 어느 날 시인의 어머니가 염색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시인은 염색을 하지 말라고 한다. 어머니는 묵묵부답 염색만 하다가 선문답 같은 말 한마디를 던진다.
““눈이 점점 침침해져서 염색을 한다.”…(중략)…집을 떠나오던 날, 나는 밥 속에서 어머니가 빠뜨린 머리카락 한 올을 골라냈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차마 말씀하시지 않은 마음 한 자락을 읽었다. “네 밥그릇에서 내 흰 머리카락 나오면 네 목이 멜까봐…….””
어머니가 있었기에 시인은 가난 속에서도 여유로웠다. 어머니는 이번 산문집에 실린 다른 작품들에서도 중요한 테마로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의 의술’ ‘찬밥과 어머니’ ‘푸덕이는 숭어 한 지게 짊어지고’ ‘가족사진’ 등의 글에서 시인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한 힘의 근원인 어머니를 밀도 높은 문장으로 그려내고 있다.
밥보다 슬픔으로 배가 부른 함민복 시인은 아직도 소금을 너무 많이 먹고 있을까? 그래서 짜디 짠 눈물을 흘리는 날이 있을까? 사는 게 팍팍하고 날이 갈수록 힘겨워진다. 그렇다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걷기에는 오늘이 아깝지 않은가?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오늘을 살아낸다면, 삶이 우리를 깔보지는 못하리라. 어쩌면 지금 어려움의 순간을 지나고 있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눈물은 왜 짠가’를 읽고 마음의 위로를 얻어도 좋겠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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