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01 월간 제750호>
[제12회 전국4-H회원사이버백일장 금상 수상작] 경화수월
윤 우 림 회원 〈경기 남양주 광동중학교4-H회〉

이번 여름방학에도 나는 4박5일로 농업에 관한 체험활동을 위해 경남 창녕군, 밀양시 일대를 찾았다.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와 차 그리고 큰 건물들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온통 낮은 집과 구불구불한 비포장 길 하늘과 주위는 매우 푸르고, 옆에서는 얕은 강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매미소리마저 청량하게 들린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는지 주변 반응을 보니 사람들도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꽤나 밝은 표정을 보였다.
“자, 4-H회원 여러분 2줄로 줄서서 제 앞으로 집합해주세요”
시골에 와서 들뜬 나머지 신나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까 그 인솔지도 선생님이 계신 쪽으로 집합했다. 자세히 보니 선생님 옆에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체험활동을 하고 봉사를 하면서 신세를 지게 될 마을의 이장님 부부되십니다. 직접 우리 학생들을 환영해 주시기 위해 마중 나오셨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마을의 이장님 부부라고 소개해 주신 분들을 쳐다보았다. 서글서글하게 생기셔서 잘 대해 주실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이장님과 인사를 나눈 뒤 나와 같이 머물 여자아이도 인사를 나누었다.
마당을 보니 웬 까무잡잡한 개 한마리가 있었다.
내 옆에 있는 여자아이와 매우 흡사했다. 까무잡잡한 개가 목줄에 묶여 깡충깡충 뛰는 모습이 마냥 귀여웠다.
나는 시골이라면 무농약 천연 무공해로 자라나는 그런 것을 상상했지만 아니었다.
역시 농약을 뿌리는구나. 암, 그렇지 농약 안 뿌리면 어떡하나…. 처음 보는 농약통을 들고 가만히 있는데 이장님 딸이 다가왔다.
“등에 매야지 뭐하나? 농약 뿌리개 처음 보나? 이래가지고 어떻게 일을 하나?!”
투덜투덜 거리면서 챙겨주는 현주라는 아이의 모습에서 농부의 기운이 느껴진다. 준비를 겨우 마치고 털털 거리는 경운기에 탑승했다.
경운기에서 내려 이장님 뒤를 졸졸 따라간 하우스는 TV에서 보던 꽤나 큰 규모의 하우스였다.
들어가자마자 열기 때문에 무슨 찜질방의 제일 높은 온도에 들어가는거 같아 밖에 나가서 숨을 한번 들이쉬고 다시 들어왔지만 열기는 아직도 그대로다.
나를 본 이장님 댁 딸은 한심하다는 듯 피식 비웃고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꽤나 큰 규모였기 때문에 이곳에서 나오는 수확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잡초를 뽑는 이장님 댁 딸 옆에서 멍하니 서있었는데 어느새 이장님께서 다가오셔서 내 등에 있는 농약통을 가져가셔서 농약을 담으신다. 이장님께서는 농약을 어떻게 뿌리는지 모르면 일을 한번 배우고 같이 하라고 권유하셨다. 그래서 나는 흔쾌히 웃으면서 일을 배우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너무 더워서 땀이 줄줄 흐른다. 땀을 닦아내면서 고개를 들어 보니 아직도 저만치 많이 남았다. 농약 친 것밖에 없는데 더워 죽겠다. 진짜 농사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하시는지 모르겠다.
꽤나 시간이 지나고 다 마칠 때 즈음에 어머니께서 참을 들고 오셨다. 마침 좋은 타이밍에 참이 왔다. 시원한 동치미를 마시며 땀을 식히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 하우스 일을 다 정리하고 다시 이장님 댁으로 돌아와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하우스에서만 일했는데도 땀으로 샤워한 듯 정말 더워서 깨끗이 씻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탁에는 숙주나물, 도라지무침, 고추잎무침, 양파 삭힌 것 등등 내가 평소에 먹던 식탁과 꽤나 다르다.
공부와 성적 등수에 신경 쓰고, 예민해지고 스트레스 받고, 진학을 고민하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저절로 흘러가 있고 빠듯하다. 어느 샌가 여유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마음 편히 여유 있게 쉴 수 있다. 어떤 것에도 쫓기지 않고, 압박 받지도 않고,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어진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느끼게 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이곳에서는 그렇게 살아간다.
높은 건물에 둘러싸여 갇힌 듯 답답하고 시끄러운 소음 속에 도심이 아닌 작고 아담하며 탁 뜨인 곳에서 흙냄새, 풀냄새를 맡으면서 바람 부는 곳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피곤하고 후회할 줄 알았지만 꽤나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꿈이 비록 무엇인지 모르고, 내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모르고 내 진로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 경화수월처럼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존재 같지만 언젠가는 꼭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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