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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월간 제74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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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한국사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도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을 함께 묻었다? |
‘삼국사기’ 중 ‘고구려 본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248년 고구려 제11대 동천왕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동천왕을 모시던 신하들이 크게 슬퍼하며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저희도 대왕님을 따라 죽어, 대왕님의 무덤 속에 함께 묻히겠습니다.”
동천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것은 제12대 중천왕이었다.
“따라죽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그것은 예가 아니오.”
중천왕은 따라죽겠다는 신하들을 말리고 나섰다. 하지만 임금이 말려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장례를 치르는 날 동천왕의 무덤 앞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왕을 따라 죽은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다 묻지 못하고 이들의 시신을 나뭇가지로 덮어 주었다고 한다. 신라에서도 왕이 죽으면 남자 여자 각 다섯 명을 죽여 왕의 무덤 속에 함께 묻었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지증왕은 502년 3월에 “그전에는 왕이 죽으면 남자 여자 각 다섯 명을 죽여 무덤 속에 함께 묻었는데, 3월부터는 이를 금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처럼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을 함께 묻는 장례 풍습을 ‘순장’이라고 한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 그를 모시던 신하나 노비, 호위 무사 등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강제로 죽여서 함께 묻는 것이다.
이러한 풍습이 생긴 것은, 죽은 뒤에도 현재의 생활이 그대로 계속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큰 무덤을 만들고, 그 속에는 살아 있을 때 쓰던 물건과 부리던 사람들까지 함께 묻은 것이다.
1982년 처음 발견되어 16년 동안 발굴 작업을 벌인 경상북도 경산시 임당 지역 고분에는 음식, 옷, 토기, 낫, 도끼, 칼, 창뿐만 아니라 밥을 쪄 먹는 시루와 다리미, 돈까지 있었다. 생활에 쓰이는 모든 물건을 넣은 것이다. 심지어 아이가 묻힌 무덤에는 작은 토기, 흙구슬 등 장난감이 들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순장을 하였다는 첫 기록은 ‘삼국지’의 ‘위지 동이전’에 있다. “부여에서는 귀족이 죽으면 사람을 죽여 함께 묻는데, 그 수가 백여 명에 달한다.”고 말이다.
앞서 지증왕이 502년 3월에 “그전에는 왕이 죽으면 남자 여자 각 다섯 명을 죽여 무덤 속에 함께 묻었는데, 3월부터는 이를 금한다.”는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순장 풍습이 사라졌다.
신라에서는 왜 지증왕 대에 이르러 순장 금지령이 나왔을까? 이 문제를 연구한 학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는 풍조가 그 당시에 널리 퍼진데다가, 모든 백성을 사랑하는 너그러운 왕의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순장의 악습을 없앴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사일에 필요한 노동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순장 풍습은 사라졌지만, 그 뒤부터는 사람 대신 인형을 무덤 속에 함께 묻게 되었다. 흙으로 빚은 인형인 토용이 통일 신라 시대의 무덤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옛날 사람들의 장례 풍습은 어떠했나요?
인류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네안데르탈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연장, 무기와 함께 시체를 땅속에 묻고 그 위에 꽃을 뿌렸다. 이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애정 표현이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과 다른 초기 인류도 무덤을 만들고 그 속에 음식, 무기, 장식품 등을 함께 묻었는데, 죽은 뒤에 다시 환생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스틱스 강을 건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뱃사공 카론에게 뱃삯을 지불하라고 시체 입에 동전을 넣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장례식 때 횃불을 밝혔는데, 횃불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영원한 안식처로 인도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장례(funeral)’라는 말은 ’횃불‘을 뜻하는 라틴어 ’푸너스(funus)’에서 나왔다.
장례 때 시신은 관 속에 반듯한 자세로 눕혔다. 그런데 기독교도들은 시신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향하도록 하고, 이슬람교도들은 시신의 머리를 메카로 향하도록 했다. 또한 불교도들은 시신의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하지만 웨일즈족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하늘로 오르기 편하게 시신을 눕히지 않고 똑바로 세워 묻었다.
장례는 매장·화장·풍장·수장 등으로 나뉘는데,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에서는 매장, 불교·힌두교에서는 화장을 했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시체를 나무 위에 올려 두는 풍장, 티베트 사람들은 시체를 물속에 넣는 수장을 했다.
옛날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의 몸속에 들어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영혼으로부터 자기 몸을 숨기려고 장례식 때 몸을 까맣게 칠했다고 한다. 그 풍습이 뒷날 검은 상복을 입는 것으로 변했다. 죽은 사람의 몸을 묶어 관 속에 넣고 못을 쾅쾅 박는 것도 죽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실제로 옛날 관에는 못이 수없이 박혀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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