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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1 월간 제74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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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골 통신 (24) 골짜기의 함성 |
- 농촌사랑 전원일기 - 이 동 희 / 소설가
"세상에 공것이 없지요.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거예요?"
지난 20일은 영동군 귀농인협의회의 연시총회가 영동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열렸다. 군수와 이 지역 국회의원도 축사를 하고 이날 임원개선을 하고 사업계획을 의결하였다.
초대 조성보 회장이 유임을 하여 그 취임식을 하고 회식 후에는 친환경 채소에 대한 교육이 있었다. 군에서 200만원 지원을 해준다고 한다. 귀농인은 영동군의 인구 증가에 대한 희망이 되고 있다. 오는 3월 31일에는 1박2일로 운영위원진 워크숍이 있고, 그 때 그도 참석하여 귀농 체험을 하였으면 하였다.
귀농인 모임 같은 데는 참석을 않는 귀농인도 있었다. 부부 교사로 정년하고 이리로 내려와 농사를 시작한 우명환(72) 선생은 고향이 여기도 아니고 충남 부여 출신인데 민주지산에 등산을 왔다가 1999년 이곳이 마음에 들어 터를 잡은 것이다. 처음에는 물한리로 와서 한 6개월 살면서 상도대리 어촌에 손수 집을 지었다. 벽돌 기계를 만들어 흙벽돌을 찍고 자신이 설계를 하여 서북향으로 집을 앉혔다. 4290㎡ 땅에 99㎡. 세상을 등지고자 그런 것은 아니고 입지가 그렇게 되어 있었다. 배산임수, 뒤에 산이 병풍처럼 쳐 있고 앞에는 개울이 흐른다. 심야전기 보일러에 독일제 무쇠 벽난로를 놓고 천정은 송판을 갖다 붙였다. 지붕은 콘크리트로 덮어 씌우고 황토 도색을 하였다. 펜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집을 짓고 본채가 끝난 다음에는 별채로 황토방을 만들고 마루방을 짓고 아래는 창고 다용도실을 들였다.
농사는 무엇을 짓느냐. 벼 보리 같은 곡식은 재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안 심는 것이 없었다. 무 배추 시금치 고추 참깨 들깨 호박 오이 가지 토마토 도라지 더덕 뭐 다 주어 섬길 수가 없다. 곤드레 블루베리 비타민 나무 같은 것도 있고 감 호두 배 대추 매실 같은 과일도 심을 수 있는 것은 다 심었다.
땅 속에 심는 것만이 아니었다. 닭 오리도 치고 개도 기른다. 개도 여러 마리이다. 개를 길러서 돈벌이라고 할까 수익을 위한 것도 되지만 외딴집에 울 담도 없이 사는데 필요 사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왕 기르는 것 여러 마리를 기르다 보니 누가 찾아오면 온 산천이 시끄럽다.
“우리 집은 개판이여.”
처음 들으면 이상하지만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흐르는 물을 받아 분수를 만들기도 하고 태양열 외등도 설치하고 물레방아를 돌리기도 한다.
연금을 타고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눈만 뜨면 밖에 나가 일을 한다.
“그래 수입이 얼마나 되지요?”
그 모든 수확에 대한 수익을 묻는 것이었다. 그의 물음에 대하여 웃기만 하다가 수입은 무슨 수입이냐고 그런 거 전혀 없다고 하였다.
“안 사 먹는 것이 돈 버는 거지요 뭐.”
부인 전정옥(71) 선생은 또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실감이 났다. 4만원 정도 하는 쌀 20kg을 두 내외가 두 달을 먹는다 치자. 그러면 한 달에 2만원인데, 그 나머지 식생활비는 돈을 안 들인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수입이었다. 호두라든지 고추 같은 것은 친인척들에게 팔기도 한다. 물론 그냥 나누어 주기도 한다.
“세상에 공것이 없지요.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거에요?”
그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부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돈을 많이 가진 부자는 할 수 없는 농촌 사랑이었다.
우명환 선생은 시조를 쓰는 작가이다. 수필도 쓴다. ‘산 골 물이 좋아서’ 등 책을 몇 권 냈다. 제목 밑에 날짜와 요일을 쓴다. 영문과 출신이라 영어로 요일을 쓴다. 전원일기 귀농일지이다. 시골 농촌 얘기지만 글로벌이다. 두 수만 소개한다.
‘심부름 안 간다는 동생하고 싸움 하다
종아리를 걷어 올려 목침 위에 올라섰네
멍이 든 회초리자국 맞던 때가 그리웁네’
‘매 끝에 정이 나니’ 중에서
‘분단에 길이 막혀 중국 경유 올라서니
도대체가 백두산이 우리건가 중국건가
멀쩡한 영산 올라가 이 지경을 만들다니’
‘백두산 수모’ 중에서
농촌에 살지만 우리 교육 민족의 얘기를 일갈하며 쓰고 있다.
매화골 시골 농촌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충북 경북 전북 3도 귀퉁이가 봉우리에서 만난 삼도봉(1177m)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금강으로 바다로 가는데 이 산골 고을에서도 어느 곳 못지않은 많은 얘기가 쏟아지고 있다. 언짢은 것은 접어두고 한 두가지 봄 얘기를 덧붙인다. 매곡면 장척리가 고향인 이병선(78) 전 한일은행장·보람은행장이 10억을 출연해서 장척문화재단을 만들었다. 지난 24일 매곡면 사무소에서 곽정균 이사장은 고교생 17명, 대학생 14명, 효행 선행자, 생활이 어려운 면민 3명 등 34명과 장척리 마을 매곡초등학교 발전기금으로 6600만원을 지급했다. 고교생 100만원, 대학생 200만원 효행 선행자 생활이 어려운 면민 200만원씩이었다. 이 시골 미담이 중앙언론에는 났는지 모르겠다.
먼저 매곡 3·1운동의거기념비 얘기를 했었는데 매곡 매화골에서 3·1만세의 불길이 치솟았었다. 인근 추풍령 헌병분견소를 불지르고 돌진하다 왜병의 총칼 앞에 쓰러지고 감옥에 갔다. 옥전리의 안준은 허리가 부러졌고 해방 후 꾸부정한 면장이 되었다.
영동군에서는 군 전체 독립유공자 59명에 대한 유지를 받들고자 독립유공자탑 ‘불멸의 혼-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을 영동체육관 앞 광장에 세운다. 이것을 위해 영동문화원(원장 정원용)에서 영동군 독립유공자탑 건립위원회(위원장 김윤호)를 여러번 가졌다. 그가 작성한 취지문 ‘나라란 무엇인가’의 결귀로 이 글을 맺는다. 4-H 동지 여러분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우리는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님들을 생각하며 교육을 하고 산업을 하고 정치를 하고 예술을 해야 될 것이다. 여기서 삶을 배우고 사랑을 체험하고 민족통일의 길을 열어 가야 할 것이다. 숭고한 님들의 독립투혼이 국민 군민의 표석이 될 때 굳건한 조국의 빛나는 역사를 오래도록 누리게 될 것이다.
나라여! 겨레여! 우리의 영원한 꿈을 광복 67년에 다시 외쳐본다. 너무도 아득한 역사의 동력 사랑의 어머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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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엔 봄이 늦게 왔다. 날이 확 풀린 날 상도대리 어촌에 흙집을 짓고 타향으로 와서 농투성이로 사는 우명환 시인을 귀농인협의회 조성보 회장과 같이 찾아갔다. 백야초 차를 한잔씩 하며 귀농 얘기를 나누다가 오후의 햇살이 따스한 마당에 나오자 여러 마리 개가 또 짖어댔다. 가운데가 우선생 오른쪽이 조회장, 사진은 기어코 안 찍겠다는 부인이 찍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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