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1 월간 제741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세자가 공부 안 한다고 내시가 볼기를 맞다?!
1405년(태종 5년) 10월 21일의 일이다. 태종은 시종을 불러 이런 명령을 내렸다.
“세자가 공부를 안 하고 놀기를 좋아해서 큰일이구나. 열두 살이면 마음을 잡고 학문에 정진해야 할 나이 아닌가.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놀러 다닐 궁리만 하니…. 이것은 세자궁에서 세자의 시중을 드는 내관이 세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탓이다. 여봐라, 내관을 잡아들여 볼기를 치도록 하라.”
태종의 명이 떨어지자 시종은 세자궁의 내시를 잡아들여 볼기를 때렸다.
“어이쿠, 엉덩이야! 세자마마가 공부를 안 하시는데 왜 제가 볼기를 맞습니까?”
“그걸 몰라서 묻느냐? 네가 세자마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 공부를 게을리 하시는 게 아니냐?”
세자궁의 내시는 걷지 못할 정도로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는 억울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세자마마, 제가 무슨 죄가 있기에 이런 형벌을 당한 겁니까?”
세자궁에 돌아온 내시는 세자를 보자 원망을 늘어놓았다.
“미안하구나. 나 때문에 네가 볼기를 맞다니. 앞으로는 네가 이런 봉변을 당하지 않게 조심하마.”
세자인 양녕대군은 내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공부를 멀리하고 놀러 다니는 버릇은 몇 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았다. 사간원에서는 세자가 공부를 안 한다고 계속 상소를 올렸고, 그래서 태종은 하루에 두 번 정해진 시각에 경서를 공부하라고 했지만 양녕대군은 며칠을 못 가 밖으로 놀러 나갔다. 그는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다. 그리고 매 사냥을 좋아하여 언제나 산 속을 헤매 다녔다. 1412년(태종 12년) 11월 29일, 태종은 이 사실을 알고 세자궁의 내시들을 불렀다.
“세자가 매를 세자궁에 두고 있다면서? 너희들은 어찌 그것을 구경만 하고 있느냐? 요즘 세자가 밤새워 풍악을 울리며 술을 마시고 논다면서? 너희들의 죄가 크다.”
태종은 내시들에게 야단을 쳤다. 뿐만 아니라 양녕대군에게 매를 바친 사람들을 찾아내어 볼기를 때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양녕대군은 공부는 안 하고 말썽만 부렸다. 그래서 1417년(태종 17년) 2월 22일에는 태종이 양녕대군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고 종묘에 나가 읽게 했다.
“저는 세자 된 직분을 다하지 못하고 아바마마와 조상님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제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행실을 고쳐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그러나 양녕대군은 반성문을 쓰고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대궐 밖으로 빠져 나가 건달패와 어울려 다니며 술타령을 했다. 결국 양녕대군은 태종의 눈 밖에 나서, 1418년(태종 18년) 세자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 대신 동생인 충녕대군(뒤에 세종)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이때 양녕대군은 자기 생각대로 되었다며 오히려 즐거워했다고 한다.
즉위한 세종은 왕족들을 위한 학교인 종학을 만들었다. 모든 왕족은 종학에서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했고, 성적이 나쁘거나 출석이 저조하면 교수자인 성규관 관원들이 처벌 받아야 했다. 그래서 왕족들은 공부에 취미가 없어도 어쩔 수 없이 종학에 다녀야 했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양녕대군이 좋아했던 ‘매사냥’이란 어떤 사냥인가요?

양녕대군은 매사냥을 좋아해 언제나 산속을 헤매 다녔다고 했다. 이 사실을 안 태종이 양녕대군에게 매를 바친 사람들을 찾아내어 볼기를 때리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매사냥은 이름 그대로 매를 이용하는 사냥이다. 길들인 매를 날려 보내 꿩이나 토끼 등의 짐승을 잡는 것이다. 매사냥을 하는 사람을 ‘매사냥꾼’ 또는 ‘매꾼’이라고도 한다.
매사냥에는 여러 사람이 필요한데, 매의 주인으로 매를 부리는 사람을 흔히 ‘수알치’라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봉받이’ㆍ’매방소’ㆍ’매받이’ 등으로도 부른다.
매사냥을 할 때는 잔솔밭에 숨어 있는 꿩을 모는 사람이 대여섯 명 필요한데, 이들을 ‘털이꾼’이라고 한다. 털이꾼들은 “우, 우!” 소리치며 작대기로 두드리면서 잔솔밭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잔솔밭에 숨어 있는 꿩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면, 털이꾼들은 “디워, 디워!” 하고 소리쳐 산마루에 있는 수알치에게 알린다. 그러면 수알치는 곧바로 매를 날려 보내며 “매 나간다!” 하고 고함을 지른다.
매사냥에는 건너편 산등에 지켜 서서 매와 꿩이 날아간 방향을 털이꾼들에게 알려 주는 ‘배꾼’이 한두 명 동원되었다. 매를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수알치와 털이꾼들만으로도 매사냥은 행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매사냥을 해 왔다. ‘삼국사기’에 백제 아신왕이 매사냥을 좋아했다는 기록이 나올 만큼 매사냥은 크게 성행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매를 기르고 사냥을 하는 ‘응방’이라는 관청을 두었을 정도였다.
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에서는 1937년 전국에 1300여 명의 매사냥꾼이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민족의 전통 수렵 활동인 매사냥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현재는 전라북도 진안과 강원도 횡성 등지에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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