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되어 일본군과 맞서 싸운 조헌은 경기도 김포 땅 감정리에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조헌은 글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배움에 뜻을 두고, 멀리 떨어진 글방을 하루도 쉬지 않고 다녔다.
어느 날, 글방에 가느라 고개를 넘어가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처녀가 나타났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처녀는 조헌에게 말을 걸었다.
“바쁘게 어디 가니?”
“글방에 가요.”
“얘야, 서둘러 갈 것 없다. 글방에는 훈장님이 안 계셔. 급한 볼일이 생겨 친척집에 가셨거든.”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까. 아마 오늘 늦으실 거야. 그러니까 나와 놀다가 천천히 가렴.”
처녀는 조헌을 숲 속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나무 그늘 밑에 앉히고는 이런 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헌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처녀는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아이, 귀여워라.” 하고 조헌을 껴안고는 입을 맞추었다.
처녀는 입을 맞출 때 이상한 짓을 했다. 입에 구슬을 머금은 채 있다가 그 구슬을 조헌의 입에 넣어 주더니, 다시 제 입으로 가져갔다.
조헌은 처녀와 놀다가 늦게 글방에 갔다. 처녀의 말대로 훈장은 친척집에 가고 없었다. 훈장이 돌아온 것은 한참 뒤였다.
조헌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글방 가는 길에 처녀를 만났다. 처녀는 어김없이 입을 맞추었으며 구슬을 가지고 장난을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갔다.
어느 날, 글방 훈장이 조헌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얘야, 요새 무슨 일이 있었니? 얼굴빛이 좋지 않구나. 병든 사람처럼 핏기가 하나도 없어.”
조헌은 고갯길에서 만나는 처녀와의 일을 훈장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것이 참말이렷다? 흠, 백 년 묵은 여우의 짓이 분명해.”
“예? 그 처녀가 여우라고요?”
“틀림없어. 여우가 처녀로 둔갑해 너를 홀린 거야. 여우도 사람의 정기를 빼앗아 먹으면 사람이 될 수 있거든. 여우는 그 동안 입을 맞추어 네 정기를 빼앗아 가고 있었던 게야. 그러니 앞으로 그 처녀를 다시 만나면 모르는 척 입을 맞춰라. 그런데 이때 구슬을 네 입에 넣어 주면 돌려 줘선 안 된다. 입을 꽉 다문 채 무조건 도망쳐라. 알겠지?”
“예, 훈장님.”
조헌은 훈장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음날 고갯길에서 처녀를 만나 입을 맞추자, 입 안에 들어온 구슬을 입에 문 채 글방 쪽으로 달아났다.
처녀는 구슬을 빼앗으려고 조헌에게 달려들었다. 조헌은 구슬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구슬을 꿀꺽 삼켜 버렸다. 그 순간 처녀가 하얀 여우로 변해 숲 속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조헌이 글방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알리자 훈장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저런! 아까운 보물이 사라졌구나. 너는 구슬을 삼켰으니,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은 알지 못해도 땅에서 일어나는 일은 훤히 알게 될 것이다.”
조헌은 어른이 되었을 때 훈장이 예언한 대로 되었다.
어느 날, 통진 앞바다로 대팻밥이 떠밀려왔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조헌에게 물었다.
“대팻밥이 바다를 덮다니, 이게 무슨 조화입니까?”
조헌이 대답했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려고 배를 만들고 있소. 배를 만드느라 대패에 깎여 나온 대팻밥이 일본에서 우리나라까지 흘러온 것이오. 전쟁이 일어날 날이 멀지 않았소.”
조헌의 예언은 들어맞았다. 얼마 뒤에 일본은 전쟁(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으로 쳐들어왔다. 조헌은 여우의 구슬을 삼켰기 때문에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훤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거문도 사건 때 영국 함대 병사가 입을 맞춘 죄로 엄청 혼났다면서요?”
1885년 4월 15일, 군함 6척을 거느린 영국 함대는 전라남도에 있는 섬 거문도를 점령했다. 그때 영국은 러시아가 겨울에 얼지 않는 항구를 찾다가 함경남도의 영흥만을 점령 대상지로 정하자, 러시아를 견제하려고 거문도에 함대를 보내 영국기를 게양했다.
그런데 영국 함대 병사들이 진주하면서 거문도에서는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서도 나루에 있는 주막에서 술을 마신 영국 병사가 작별 인사를 한다며 주모에게 가볍게 입을 맞춘 것이다. 주모는 기겁을 하여 비명을 질렀고, 이 소리를 듣고 섬사람들이 달려왔다. 섬사람들은 영국 병사를 붙잡아 밧줄로 꽁꽁 묶어 영국 함대에 넘겼다.
이튿날, 영국 함대 사령관은 나루에 섬사람들을 모아 놓고 손이 발이 되도록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는 죄를 지은 병사를 뱃머리에 매달아 놓고 섬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러 번 바다 속에 빠뜨렸다. 그 병사는 이 벌로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서양에서는 입맞춤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영국 병사는 입을 맞춘 죄로 섬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청난 벌을 받았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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