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1 월간 제733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표류해 136일 만에 고국에 돌아오다

조선 성종 때 제주에 부임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풍랑을 만나 중국에 표류하여, 자그마치 136일 만에 고국에 돌아온 관리가 있었다. 그가 바로 136일 동안 자신이 겪은 일을 자세히 기록하여 ‘표해록’이라는 책을 남긴 최부다.
그는 제주에 추쇄경차관으로 파견 근무를 했는데, 이 벼슬은 달아난 노비나 병역 기피자들을 잡아들이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풍랑을 만나 표류해

1488년(성종 19년) 윤 1월 3일, 최부는 서둘러 고향 나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았기 때문이다.
배에는 그를 포함하여 43명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배가 제주의 추자도 앞바다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폭풍이 불어 닥치더니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배를 덮쳤다. 배 안에 물이 들어와 배는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았다.
“물을 퍼냅시다!”
최부는 이렇게 외치며 앞장서서 물을 퍼냈다.
풍랑을 만난 최부 일행은 여러 날 동안 방향을 잃고 바다에 표류했다.
중간에 폭풍이 그쳤지만 배고픔과 목마름이 그들을 괴롭혔다. 물이 떨어져 자신의 오줌을 받아 마시며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아, 저기 육지다! 육지가 보인다!”
드디어 육지를 발견하여 간신히 상륙한 일행은 기절할 듯이 놀랐다. 그런데 거기에는 해적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최부 일행은 가지고 있던 재물을 해적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긴 뒤 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3일 만에 또다시 육지에 닿았다.
이때 최부는 상을 당한 몸이어서 상복을 입고 있었다. 선원 한 사람이 최부에게 말했다.
“나리, 이제는 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으시지요. 여기 사람들이 우리를 노략질이나 일삼는 왜구로 오인할 수도 있습니다.”
최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구차한 목숨을 건지겠다고 예의를 버리란 말인가? 그럴 수 없네.”
최부는 선원의 제의를 끝까지 거절하고 상복을 입은 채 육지에 내렸다. 그곳은 중국 절강 지방의 영파라는 곳이었는데, 일행은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혀 관청으로 넘겨졌다.

해적에 재물 다 뺏겨

중국 관리들은 최부 일행을 왜구로 알고 있었다. 영파가 오래 전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최부는 중국 관리들에게 심문을 받을 때,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한자로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전부 조선에서 왔소. 13일 동안 표류하다가 여기에 도착한 거요.”
“조선에서 왔다고? 그럼 중국 북경에서 조선 서울까지는 얼마나 되는 거리요?”
“3900여 리쯤 됩니다.”
“조선 땅에는 몇 개의 도와 몇 개의 부·주·군·현이 있소?”
“조선에는 8도가 있고, 부·주·군·현이 통틀어 300여 개가 있습니다.”
최부는 무슨 질문이든 막힘없이 자세히 대답했다. 그제야 중국 관리들은 의심을 풀고 최부 일행을 조선 사람으로 인정했다.
“그동안 실례가 많았소. 당신들은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돌려보내기로 했소.”
최부 일행은 북경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서울 청파역에 닿은 것이 6월 14일이었으니, 제주 추자도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를 시작한 지 136일 만에 조선에 돌아온 셈이었다.
최부는 여행을 하는 동안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래서 그것을 8일 동안 5만 자 분량의 글로 정리하여 성종에게 올렸다. 이렇게 완성된 ‘표해록’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보다 뛰어난 여행기로 평가받고 있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조선 시대에 최부보다 더 멀리, 더 오래 표류한 사람이 있었나요?”

조선 시대에 씌어진 표류기에는 최부의 ‘표해록’ 말고 정약전의 ‘표해록’이 있다. 정약전은 소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문순득이라는 어부가 외국에 표류했다가 고향에 돌아왔다. 문순득은 자신의 표류 생활을 낱낱이 털어놓았고, 정약전은 그 이야기를 정리하여 글로 남겼다.
1801년 12월, 문순득은 동료 어부 네 사람, 그리고 삼촌과 소흑산도를 출발하여 남쪽 수백 리에 있는 태사도로 갔다.
태사도에서 홍어를 사 배에 싣고 돌아오던 일행은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1802년 2월 2일 일본의 유구국(지금의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이들은 유구국에서 아홉 달쯤 머물다가 10월 7일 중국으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유구국에는 조선으로 곧장 가는 배가 없어 중국을 거쳐 조선에 가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때 또 풍랑을 만나 표류를 하는데, 3주 만에 도착한 곳이 여송(필리핀)의 로손 섬이었다.
문순득은 1803년 3월 16일 중국으로 향하는데, 광동·북경을 거쳐 조선 땅에 들어와 소흑산도에 닿은 것이 1805년 1월 8일이었다. 그러니까 3년 2개월 만에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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