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01 월간 제732호>
매화골 통신 (16) 이제 모심기는 잔치가 아니다

-달라진 농촌 풍물-    이동희 / 소설가

"모심기의 압권은 오전 참에 있다
술이 들어가면 웃음이 터져 나오고
소리들이 커진다"

모심기가 한창이다. 이미 모를 심은 데도 많이 있고 아랫녘 윗녘 보름 전후 차이가 있는데 5월 중순 이곳에서는 여기 저기 들판에서 모를 내고 있다.
농사일은 벌써 한참 전에 시작이 되었다. 여러 작물의 파종도 했고 모종을 하기도 했다. 벌써 많이 자란 풀을 매기도 하고 제초제를 뿌리기도 하고 새로 씨를 넣을 밭을 장만해 놓기도 하였다. 포도니 복숭아니 여러 과수들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한 해 농사는 모심기로부터 출발을 한다. 여기 이 근방 충북의 남부 3군 옥천 보은 영동만 해도 다들 벼농사의 4배가 넘는 포도농사를 짓고 있었고 복숭아 사과 배 외에 여러 가지 유실수를 재배하는 것으로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래도 벼 재배가 농사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모심기가 큰 일이었고 타작이 큰 일이었다. 큰 행사였고 그날은 온 동네 잔칫날이었다. 좌우간 모심기는 힘이 들기도 했지만 신경이 많이 쓰이었고 그것을 해놓지 않으면 다른 계획이 서지 않고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모심기는 옛날처럼 여러 사람들이 동원되지 않고 한 사람의 이앙기 기사가 다 하였다. 물론 주인이 옆에 따라다니며 보조를 하여야 하고 단도리를 하여야 했다.
전에는 못자리를 만들고 때가 되면 모를 쪄서 한 웅큼씩 묶어 썰어 놓은 논바닥 여기 저기 적당한 간격으로 휙 휙 던져 놓고 그것을 뜯어서 심는 것이다. 줄을 맞춰야 하므로 양쪽에서 못줄을 맨 막대기를 꽂고 서서 다 심기를 기다려 옮겨 꽂고 또 옮겨 꽂고 하였다. 주욱 늘어서서 모를 심는 사람들은 줄에 간격을 표시한 눈금에 맞추어 열심히 심는다. 한 번 두 번 한 해 두 해 하는 것이 아니므로 눈금을 안 보고도 빨리 빨리 심을 수 있다. 못줄을 금방 옮겨 꽂지만 왜 이렇게 느리냐고 야단을 친다. 농이고 우스갯소리로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빨리 모를 못 심어서 하는 불평일 때도 있다. 질라이-능숙하게 일을 하는 달인, 여기 말이다-들이 하는 얘기이고 또 때로는 돈내기-청부-로 맡아서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대개 못줄을 옮겨 꽂는 것은 서툰 사람이거나 아이들을 시키기 때문이다. 더러는 주인이 못줄을 잡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더 야단들이다.
“아니 못줄 잡는 사람 어디 갔나?”
“졸고 있는 개비여.”
“간 밤에 이불 등에 덮고 잔 거 아녀?”
누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다.
“새참 가질러 갔어.”
“막걸리부터 가져 와야지.”
“알았으닝께 그런 염려는 붙들어매고 빨리 심기나 해야.”
주인이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능률이 떨어진다. 모두들 품앗이로 하는 일이고 자기 집에서는 주인들이다.
이윽고 저쪽에서 술통을 앞세워 참이 오는 것이 보인다. 참이 떴다 하면 어깨가 덜썩거리고 마구 손놀림이 천방지축 신이 들린다. 한 머리서는 모심기 때 부르는 격양가를 멋들어지게 불러재치고 한 머리서는 회심곡을 부르며 어긋네방아를 놓는다.
모심기의 압권은 오전 참에 있다. 점심이 있고 오후의 참이 있고 또 일을 마치고도 뭐가 있지만 처음 나오는 참에 성의가 들어 있다. 밥은 점심에 나오는 것이고 참에는 가벼운 국수라든지 묵채 같은 간식이 나오고 여러 가지 싱거운 찬들이 열 가지도 넘고 다 입에 짝짝 붇는 것들이었다. 김치 물김치만 해도 다 찹살풀을 쑤어 넣고 꿀이 들어간 것들로 자꾸만 숟갈이 가게 하였다. 술이 들어가면 웃음이 터져 나오고 소리들이 커진다.
“오늘 일찍 끝내서는 안 되겠어.”
“술은 또 가져오면 돼야. 슬슬 놀아가면서 해야.”
“하 이거 참, 이러니 이거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야. 빨리 논에 들어가.”
좌우간 기분들이 좋고, 좋다는 데 대해서야 뭐라고 토를 달 필요가 없었다. 연방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다 옛날 얘기이고 요즘은 이앙기 기사가 모든 일을 혼자 다 하여 그런 옛날 풍물은 찾아볼 수 없다. 어떻게든 빨리 이 집 것을 해 치우고 다른 집 논으로 가고 또 거기서도 빨리 해 치우고 다른 집 논으로 이동해 하는 것이었다. 대개 하루 서너 집 모를 심어야 하기 때문에 잠시도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다. 예정된 일정을 맞추지 않으면 연쇄적으로 차질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농을 할 시간도 없고 할 상대도 없었다. 주인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주인이다. 식사나 참도 빵이나 우유로 해결하고 자장면을 시켜 먹기도 한다. 논 가운데서 핸드폰으로 전화 한 통화만 하면 금방 배달해 주는 것이었다. 술은 가급적이면 작업을 마치고 하든지 안 한다. 작업중 술은 음주운전이 되는 것이다. 정취가 없고 여유가 없다고 탓할 것인가.
노천리 상구 박전무-농협에서 전무로 퇴직한 박희선씨를 마을에서는 아직도 그렇게 부른다-는 예년과 같이 여섯 마지기 1,200평의 논에 모를 심었다. 포도 농사는 안 하고 감나무를 많이 심어 이제 열리기 시작하였다. 5월 20일 모심는 날 시간에 맞추어 장화를 신은 채 사이드카를 타고 농로에 내린 박전무는 벌써부터 작업이 시작된 논에 들어가 이미 다 단도리 해 놓은 모판을 매만지며 첨벙첨벙 논 가장자리를 왔다 갔다 하였다. 일은 기사가 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고 잠도 오지 않았다. 이날을 기다리며 모판에 정성을 다 쏟았다. 아직 추울 때 육묘상자에 황토흙을 체로 쳐서 앉히고 볍씨를 심어 만든 여러 개의 모판이었다. 마을 여러 집이 실패를 하여 모판을 버렸다. 앞집의 이제성씨네도 실패를 하여 사서 모를 심었다. 한 평에 2,500원 씩이다. 그것으로 10평을 심는다. 가령 1,200평이면 30만원이다.
기계 품값은 평당 200원씩이다. 논을 가는 데 200원 써리는 데 200원 모를 심는 데도 200원이다. 6마지기 모를 심는데 24만원이 든다. 3시간 남짓이면 다 심는 삯이다. 콤바인으로 베고 타작을 하는 데도 평당 200원 씩이다.
지난 4월 26일 비가 오는 날 아침 노천리 상구 마을회관 스피커에서 방송을 하였다. 11시까지 이문세씨 집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도 방송을 하였는데 황간 토종식육식당에 가서 점심을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되자 모두들 나와서 승용차 봉고차 화물차에 되는대로 나눠타고 이동을 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노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젊은 부부도 많이 있었다. 강은식 중대장 정승기 이장-전직인데 역시 요즘도 그렇게 부른다-8순이었다. 돌아가신 중형과 동창이며 동갑인 이들의 행사에 그도 참석을 하였다.

 

마을의 강은식 중대장과 정성기 이장 두 동갑네가 팔순을 맞아 노천리 상구 사람들에게 점심을 냈다. 잔치를 대신하는 것이어서 삼겹살을 양껏 먹을 수 있게 구웠고 식사는 식성대로 냉면과 된장찌개에다 밥을 시켰다. 생일 축하를 받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다. 요즘의 이 마을 풍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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