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마음에 선물하는 자유와 휴식
살다보면 가까운 이에게 더 자주 상처를 받는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사람과는 조금은 가식적일지도 모르는 친절과 배려로 무장하여 다치게 하는 일이 드물지만, 가족이나 친구처럼 편한 관계에서는 작은 일로도 큰 상흔을 남길 수 있다. 최근 친구와 말다툼이 있었다. 사소한 관점의 차이가 논쟁을 불렀고 다툼으로 이어졌다. 그 다툼이 마음에 상처가 되어서였을까? 오랜만에 이 책을 펼쳤다. 정신과 전문의 이무석 박사가 쓴 ‘30년만의 휴식’이다. 이 책에는 ‘마음의 평안과 자유를 얻는’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마음에 평안과 자유가 있는 휴식을 준다는 건데, 솔직히 말하면 내게는 읽기 버거운 책 중 하나다.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오랜 시간 아픔이었을 무의식속의 ‘어린 나’와 만나게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정신분석학 강의를 들었다. 심리를 알면 글 쓰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 가볍게 출발했다. 하지만 학문은 깊고 어려웠으며 인간의 내면을 직시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그 힘든 고비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이 책과 만났다.
그리고 난생처음 진정한 나를 만나게 되었다. 저자인 이무석 박사는 사람들이 자기의 무의식으로 떠나는 여행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두려워서라는 것. 나 역시 그랬다. 무의식을 대면하는 일은 불편하고 힘들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 안의 갈등을 해결하고 진정한 평안을 찾으려면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는 무의식을 탐구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아울러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과거의 어떤 일이 생각났다면, 소중한 경험인데, 그 때가 무의식에 접근한 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의식, 즉 내 안에 살고 있는 어린 나를 만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반복된 행동이나 습관으로 인해서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다면 ‘마음속 아이’와 만나야 할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내면의 아이는 9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분노하는 아이일 수도 있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아이거나 외로움에 시달리는 아이 혹은 두 얼굴을 가진 아이 등으로 나타난다. 마음속의 아이는 일상생활 중에 수없이 나타나서 원치 않는 오류를 반복하게 하는데 그것에 집중해 원인을 찾아낸다면, 그 순간 마음속 아이와 만나게 된다.
자, 마음속 아이를 만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한 대상을 용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용서를 거쳐야만 어린아이로부터 벗어나 성장하게 된다.
“어린시절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상대는 아버지일 수도 있고 어머니일 수도 있다.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용서하기 시작하자. 용서는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이다. 물론 용서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용서란 고슴도치를 껴안는 것이라고 한다. …(중략)…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해 주면, 용서가 쉬워진다. 뿐만 아니라 내가 나이가 든 후에 나에게 힘든 상황을 만들었던 사람들도 용서해야 한다. 그들 또한 그 자신의 어린 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 것일 수 있다. 용서는 짐을 벗는 것이다. …(중략)… 마음에 휴식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를 몹시 힘들게 한 어떤 이를 용서까지는 아니지만 이해하게 된 적이 있다. 그의 마음속 아이가 끊임없이 비교하고 시기하며 스스로를 더 괴롭히는 ‘질투하는 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쉽게 상처받거나 열등감을 느끼거나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긴다면 ‘자기 반사 대상’을 가지라는 저자의 말을 전하고 싶다. 자기 반사 대상이란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비춰주고 격려해주는 인물을 말한다. 사람은 거울 없이 자기 얼굴을 볼 수 없다. 마음의 거울은 타인이다. 그래서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보게 되는데, 그가 나를 긍정적으로 반사해 주면 나도 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부정적으로 반사하면 나도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주변에 늘 잘못을 지적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다 너를 위해서’라고 얘기한다 해도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잘못된 것을 고치려는 마음보다 자신이 뭔가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그들은 당신의 좋은 반사 대상은 아니다.”
미지의 나라를 여행하는 것보다 흥미롭고 신비로운 일은 무의식에 숨어 있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지친 마음에게 자유와 휴식을 선물하고 싶다면 ‘30년만의 휴식’을 통해 마음속 아이와 만나 그의 등을 다독이며 꼭 품어 안아주길! 그리하여 가시밭이던 마음밭이 갓 피어난 6월의 장미꽃처럼 싱그럽고 환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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