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01 월간 제731호>
매화골 통신 ⑮ 피는 물보다 진하다
-종친들의 만남-    이동희 / 소설가

"골짜기마다 나온 일가들은 반갑게
악수를 하며 담소를 한다"

꽃피는 새봄과 함께 하는 행사가 또 하나 있다. 화수회(花樹會)이다.
종친들이 한 자리 모여 얼굴도 보고 인사도 하고 소식도 전하고 들으면서 피는 물보다 진함을 가슴 뭉클하게 느끼는 것이다.
날이 따뜻해지고 외투도 벗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들이를 하는 것이다. 너무 춥고 너무 더운 계절을 피하여 늘 이맘때 만나는 종친들이지만 참으로 반갑다. 머리가 허옇고 비실비실하는 사람들이 골짜기마다 기어나와 얼굴을 맞대고 악수를 하며 한참 동안 안부를 묻는다. 꼭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안 죽고 살아서 다시 만난다는 생각을 한다. 말로도 한다.
“안 죽고 살았네.”
“정말 반갑네.”
“그리여.”
시간이 되기 전부터 한 사람 두 사람 모여 들었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지팡이를 짚은 노구도 있고 부축을 하고 나온 부자 고부도 있다. 4월 16일 토요일 11시, 영동 시장 앞 지전예식장 3층이다. 이날은 결혼하는 사람이 없는지 2층 식당과 3층 예식장을 다 차지하여 행사를 하는 것이다.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한 임원들 그리고 도 화수회 임원들 옥천 보은 등 인근 화수회 회장들이 내빈석에 도열하고 서로 반갑게 악수를 한참씩 한 후 앉아서 담소를 한다. 대부분 70을 넘은 노인들이다.
매곡 상촌에서는 내오곡의 상호 남양리의 재주가 버스로 왔고 노천리의 이웃한 아주머니(박우용 형수) 재후는 상촌의 재홍이 끌고 온 화물차를 타고 왔다. 재홍은 늘 그러는 대로 내외 왔다. 종친회에서는 성은 빼고 이름이나 아호만 부른다. 그도 모처럼-처음이다-아내와 같이 갔다. 앞으로는 어떻게 되었든 이제 살 날도 그렇게 많지 않아 종친회에 한 번 참석을 하는 것도 도리일 것 같아 사정을 하였던 것이다.
이날은 청와대에서 초청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을 준다고 하여서인지 많이 참석하였다. 식장이 꽉 찼다. 회의 시작 시간이 지나도록 악수들만 하고 있다가 연주 회장이 단상으로 올라가 인사말을 하였다. 그동안 종친회 활동에 대해 일일이 그 사례들을 들어가며 얘기하는 것이었다. 전국화수회 회장이 같은 종친인 대통령의 선물을 받아서 내려 보내게 한 것도 포함되었다. 경주이씨 종친으로 정계의 제1인자인 대통령과 무슨무슨 장관, 재계에서는 또 제1인자인 건희 회장을 비롯해서 굵직 굵직한 인사들이 많았다. 각계의 1인자들만 해도 열 손가락에 다 꼽지 못하였다. 말하는 사람의 어깨에도 힘이 들어 있었고 듣는 사람들 특히 촌로들에게는 흐뭇하게 들렸다. 어떻게 보면 자화자찬 같지만 그렇게 얘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회장은 늘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종친인 이 지역 국회의원이 지금 오고 있다고 하였다.
인사말을 길게 한 회장은 내빈석에 있는 임원들 앞으로 가서 축사를 해 달라고 하였다. 고문 청년회장 이사가 나와서 축사를 하였다. 재미있는 얘기를 섞어 훌륭한 종친들에 대한 자랑도 하였고 시국 현안에 대해서도 실감 있게 얘기하였다. 1부는 개회식으로 인사말과 축사 2부에 감사보고 예산결산보고 사업보고 같은 요식행사가 있는데 계속 축사를 부탁하고 있었고 대개 사양들을 하였다. 그러나 그냥 기다릴 수는 없어 종내에는 그에게까지 와서 무슨 말이든 좀 하라는 것이다. 그도 사양을 하였지만 시간을 조금만 더 끌어달라고 하여 나갔다.
“삼국유사에 신라초기 육촌(六村)의 하나인 알천 양산촌의 촌장 알평(謁平) 시조의 기록이 나옵니다. 하늘에서 강림하여 경주 표암봉에 내려온 우리의 뿌리입니다. 지금은 촌이 시골이지만 그 때는 중심 도시였습니다. 우리나라 이씨는 중국에서 귀화한 몇몇을 빼고는 거의 이알평의 후손에서 분관한 것이고 이씨조선 왕족이었던 전주 이씨도 중간에 파가 갈려 나간 것입니다.”
그도 우선 자랑거리를 들추다가 이 얘기 저 얘기 주어 섬겼다.
“어릴 때 마을에 여러 집의 일가가 있었는데 설과 추석에는 돌아가면서 차례를 지냈어요.”
그의 집의 순서가 제일 먼저여서 설에는 다 그의 집으로 먼저 와서 세배를 하고 차례를 지냈다. 음복을 하고 떡국을 먹고는 다음 집으로 가고 또 그 다음 집으로 가고 그렇게 다섯 집을 다녔다. 떡국은 여러 번 먹을 수가 없었고 어른들은 번번히 음복을 하며 산적이나 탕으로 안주를 하였다. 아이들은 밤이나 곶감 호두 다식 같은 것을 집어 먹었고 단술 같은 것을 먹었다. 그렇게 다섯 집을 돌고 나면 한 나절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 도시로 나가고 한 집이 남아 있는데 여기 같이 왔습니다만 제가 낙향한 후에도 차례는 같이 지내게 되지 않아 그 때 옛날이 그립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화수회가 일가들이 만나는 것입니다. 영동뿐이 아니고 여기 충청북도 화수회 회장님도 와 계시고 전국 화수회 회장님의 선물도 와 있고, 이렇게 볼 때 한 마을 몇 집의 일가들만이 아니고 전국의 일가 친족들이 다 같이 만나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기다리던 종친이 들어오고 있었다.
축사가 다 끝나자 12시가 넘었고 2부 회의는 빨리빨리 진행이 되었다. 결산자료에 의문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하자 모두들 박수를 쳤다. 1년 동안 지출한 회의비 통신비 장소 대여비 식사대 등에 대하여 적은 것이다. 예산과 사업 보고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항에 대하여 무슨 질문이 있느냐고 하자 상촌 임산의 종현이 왜 이사회는 한 번도 하지 않느냐고 하였다. 회장이 여러분들의 요구가 있으면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좌중은 이사회는 해서 뭘 하냐고 하며 빨리 끝내고 밥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모두들 박수를 쳤다.
그렇게 1, 2부 회의를 마치고 3부라고 할 수 있는 회식을 하였다. 떡과 술 과일과 함께 부글부글 끓는 불고기 전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이 진짜 종친회였다. 동네끼리 친한 사람끼리 네 사람씩 앉아서 권커니 자커니 하며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맥주 소주 두어 가지 음료가 있어 식성대로 주량대로 자유롭게 따라 마셨다. 옛날과 달라 억지로 권하지도 않고 기를 쓰고 마시려고도 하지 않았다. 뭐가 됐든 잔에다 가득 따르고는 건배를 하였다.
“건강을 위하여!”
“내년에 또 만나여.”
갈 적에는 약속대로 묵직한 선물 상자를 들려 주었다. 내외 은수저와 반상기였다. 무엇보다도 먹는 것은 즐거웠다.

종친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화수회 모임에 많은 회원들이 참석했다. 내빈석에는 화수회 임원들 그리고 이 지역 국회의원도 참석하였다. 따뜻한 봄날 주말 골짜기마다 나온 일가들은 반갑게 악수를 하며 담소를 나눈다. 한 시간 이상의 회의가 끝나면 술과 떡이 있는 점심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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