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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1 월간 제72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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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골 통신 ⑪ 한 겨울 사랑방 이야기 |
-마을회관에서- 이동희 / 소설가
"저녁을 먹고 심야전기 보일러로 따끈한 마을 회관에
하나 둘 모이다 보면 여러 사람이 되고 웃음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동지섣달 저녁 시골 사랑 화로가에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이야기책을 읽기도 하고 만담을 하기도 하고 외지에 다녀온 이야기도 있고 이런 저런 농사 얘기도 많았다. 밤이 길었다.
눈이 와 덮이면 한가했다. 농가의 방학이었다. 늦잠을 자도 상관이 없고 밤을 새워 이야기를 해도 되었다. 막걸리에 배추뿌리에 동치미에 누룽지라도 있으면 좋고 듣기 좋은 이야기만 있으면 되었다. 이야기가 그리운 때였다.
지금 농촌 시골에는 마을회관이 마을마다 있지만 옛날 사랑방의 정취와는 다르다. 새 소식은 TV가 전하고 이야기책 대신 연속극이 채널마다 널려 있다.
채널이 상당히 많아 입맛대로 리모컨을 누르기만 하면 국내외 프로들이 대령하고 있다. 드라마 영화도 있고 스포츠도 있고 예능-이름이 맞는지 모르지만-이라는 프로가 사람들을 연방 웃기기도 한다.
옛날이야기 책은 없고 더러 굴러다니는 무협지나 야한 소설책이 있었지만 그런 것을 읽는 사람은 없고 농사 정보가 실린 잡지 같은 것이 벽에 결려 있는데 그림이나 훑어보는 정도다. 언젠가부터 라디오를 듣는 사람도 별로 없다.
저녁을 먹고 심야전기 보일러로 따끈한 마을 회관에 한 사람 두 사람 모이다 보면 여러 사람이 되고 웃음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어떤 때는 핏대를 올리고 언성을 높여 다툴 때도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더 모이고 마을 회관 두 방 거실까지 다 들어찬다.
서울 등 대도시 사람들은 같이 모이는 일이 별로 없고 앞집 옆집 사람과 인사도 안 하고 모르고 산다. 삭막하고 외로운 섬에 떨어져 살고 있는 것이 도시의 삶인지도 모른다.
군(郡)에서 쌀을 여러 포대 지원해 주어 그것으로 밥을 해서 같이 먹기도 한다. 콩나물밥 무밥을 하여 양념장을 한 숟갈 떠 넣고 비벼 먹기도 하며 밀가루 반죽을 하여 콩가루를 많이 뿌려 넣고 밀어서 칼국수를 하기도 하고 메밀과 도토리로 묵을 쑤어 묵밥을 하기도 한다. 좌우간 쌀값보다 반찬값이 더 드는데 여러 집에서 조금씩 가져오기도 한다. 밥을 해 먹을 때는 해질 무렵부터 마을 회관은 북적거린다.
뭐니 뭐니 해도 무엇을 먹을 때가 제일 즐겁다. 그 때는 모든 것을 잊고 웃으며 목 운동도 한다. 술 말이다. 잘 먹는다기보다 갱식이 나물죽을 쑤어먹으며 보릿고개를 넘기던 세대들이어서 뽕나무밭이 바다가 된 셈이다.
궁핍한 시기 절량기에 있었던 일화 한 토막. 손님이 오면 보리를 많이 섞었을망정 밥을 해서 대접을 하였고 손님은 밥을 조금 남기고 덜 먹음으로 체면을 차리었는데 그것을 기다리던 아이들은 밥에 물을 붓자 앙하고 울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손님은 너희들 물 말아줄려고 그랬다고 숟갈을 놓았고. 서글픈 얘기지만 오히려 그때가 좋았던 것도 같다. 없지만 체면이 있고 인정이 있었다. 그리운 보릿고개(강준희)라는 소설도 있다.
“어허, 많아여. 그만해야.”
밥도 그렇지만 술도 탐하는 사람이 없다. 잘 밤에 음식을 많이 먹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늙은이들도 잘 안다. 저녁은 거지같이 먹으라고 했다. 술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못 일어나여.”
술이라면 사양을 않는 박윤근, 장직상 씨도 자꾸 잔을 치켜든다.
“해가 똥구멍에 닿도록 자아.”
“저녁엔 얼마든지 들어가지.”
“암만, 들어가는 것은 얼마든지 들어 가여.”
“밑 빠진 독이잖아.”
“밑은 안 빠져도 아직 한 되는 담을 수 있어여.”
“한 되가 뭐라. 한 말은 될 걸. 지고가지는 못해도 먹고는 가지.”
“아니여. 말도 안 돼야.”
“어느 말인지 헷갈리네.”
좌우간 전에는 정말 밑 빠진 독이고 고래 심줄들이었는데 요즘은 두 잔 아니면 많아야 석잔, 넉 잔도 잘 안한다.
안 된다고 큰일 난다고 엄살을 부리지만 그 재미로 또 자꾸 더 따른다.
“할 일도 없는데 한 잔 더 해야.”
눈이 쌓여 있고 땅은 꽝꽝 얼어붙어 있는 엄동설한에 무엇을 할 것이 있단 말인가. 예전에는 새끼도 꼬고 짚신도 삼고 가마니도 치고 자리도 치고 하였지만 요즘은 그런 것도 없고 만고 편한 팔자들이다.
“까짓 거 따라 봐. 삼수갑산엘 갈망정. 뭐 죽기밖에 더 할라고.”
“죽기는 왜 벌써 죽어. 구구팔팔 헤야지.”
“아니여, 120까지 산 돼야.”
“여자들이 더 오래 산 돼야.”
술은 안 하지만 여자들도 거들었다.
밥을 먹고 나도 술은 끝나지 않았다. 먹지는 않고 들고만 있기도 하였다. 그것이 다른 음식과 다른 것이다. 밑반찬을 한두 가지 그냥 놔두면 되었다.
끼리끼리 이야기를 하였다. 양파를 서로 나눠 심은 사람들이 한 군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얼마나 자랐고 어떻게 관리하고 판로가 어떻고 정보를 교환하였다. 이장은 퇴비를 더 신청할 사람 이름을 적었다.
TV에서는 서해안 사격훈련 뉴스가 계속 나오고 술잔을 놓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마치 전문가들이나 되는 듯이 서로 아는 체를 하였다.
북의 군사시설 요충지에 미국이 다 조준을 하여 놓았는데 10분 내로 다 박살을 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전쟁은 끝난다고 하였다. 믿거나 말거나였다. 그런데 왜 그러지 않는지 아느냐고 하였다.
“왜 그라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러자 이야길 꺼낸 친구는 뜸을 들이고 있다가 호기 있게 말하는 것이었다. 왜 그런고 하면 (북한이) 먼저 공격한 2, 3분 동안 이쪽의 인명 살상이 50만 정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못 한다는 것이었다.
시골 촌구석 마을 회관이지만 심상찮은 얘기를 텅텅 하였다. 요로원 야화였다. 듣고만 있던 그가 한 마디 하였다. 이번 달 어느 잡지(월간 J)에 난 기사인데, 북한이 사이버 공격을 할 시 15분만에 남한 주요시설이 초토화된다고 하였다. 지방 방송은 다 끄고 모두들 주목을 하였다.
“그러나 말이지요. 여기까진 안 날아오니까 염려들 말아요. 여러분들 복인 줄 아세요.”
병 주고 약 주었다.
“정말이여?”
“여태 그걸 모르셨어요?”
그가 되묻자 좌우간 술을 한 잔 더 하자고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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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 상리 마을회관에 노인들이 다 모였다. 군에서 지원해 준 쌀로 같이 저녁을 해 먹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TV에서는 연평도 앞바다 사격 훈련 뉴스가 흘러나오고 옆방에서는 할머니들이 또 한 방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85세인 박순용씨 댁이 제일 많고 김해룡 교장 선생 부인에 이어 임차영 할머니는 3등이라고 나이 자랑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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