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1 월간 제727호>
<4-H인의 필독서>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숨겨진 시의 세계로 안내하는 보물지도

지난 한 해, 나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았다.
여행을 남의 일로만 여기던 내가, 틈나는 대로 배낭을 꾸려 떠났고 두 다리로 세상과 만났다.
2011년, 새해를 맞으니 설렌다. 앞으로의 한 해를 어떻게 살아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대와 함께 한 가지 다짐을 한다. 새해에는 날마다 시를 읽으리라. 아침마다 읽는 시로 삶이 꽃처럼 환하게 피어날 수 있게.
매일 아침을 꽃처럼 피어나게 해줄 책으로 시인 안도현이 엮은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을 골랐다. 이 책의 서문에서 안 시인은 이런 말을 했다.
“시를 읽어도 세월은 가고, 시를 읽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그러나 시를 읽으며 세월을 보낸 사람에 비해 시를 읽지 않고 세월을 보낸 사람은 불행하다.
시 읽기가 새롭고 다양한 세계에 대한 하나의 경험이라면, 시를 읽지 않은 사람의 경험은 얕아서 찰방거리고 추억은 남루할 테니까 말이다. 추억이란 세월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어느 날,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이라는 책을 마음에 품게 된 건 바로 이 서문 때문이다.
세월은 시를 읽어도, 읽지 않아도 간다. 어차피 가는 세월을 살면서 남모를 기쁨을 품고 있다는 것,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시 읽는 기쁨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긴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다섯 단락으로 분류되어 있다.
‘열 몇 살 무렵, 문학에 눈뜨기 시작할 때 좋아하던 시’, ‘스물 몇 살 무렵, 문학청년 시절에 좋아하던 시’,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시’, ‘내가 사랑하는 감동적인 시’, ‘내가 사랑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로 나눠 묶어 놓았고, 실려 있는 시에는 안도현 시인의 단상이 꼬리말처럼 달려있다.
담담히, 세월의 이야기와 버무려 낸 그 말들은 어렵고 낯선, 처음 읽은 시라고 할지라도 마음 편하게 눈인사를 나누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 흐르고 흘러 저물녘엔 /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도 한다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흐른다면’ 중에서)
이 시에 달린 안도현 시인의 한 마디, “아직까지 이 절창에 취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국어 교과서를 잘못 만들었거나 우리나라 국어 교육이 잘못 되었다”는 말에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즐겨 읽지 못하게 한 이유를 정확히 꼬집어 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고 시작하는 신경림 시인의 시 ‘파장’의 꼬리에는 이런 글이 달렸다.
“얼마 전에 신경림 선생을 뵌 자리에서 나는 여쭈어 보았다. (중략) “그러면 이 시집의 대표작을 한 편만 꼽으라면 선생님은 ‘농무’라고 생각하세요?” “아냐. ‘농무’는 그저 상징적인 제목으로 의미있는 게 아닐까. 나는 ‘파장’ 같은 시가 오히려 맘에 들어.” “그러면 그렇지! 나도 ‘파장’이다. 못난 놈들은 그저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이 한 마디는 그대로 절망과 희망의 압축파일이다.”
공감! 신경림 시인의 말에도 안도현 시인 말에도 공감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파장’을 더 정겹고 편하게 읽을 수 있어 즐거웠다.
이처럼 안도현 시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닫힌 시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 준다.
‘내가 사랑하는 감동적인 시’라는 분류 속에 들어 있는 시를 한 편 소개한다.
“풀 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 나는 /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 (중략) / 비로소 나는 /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 오늘 알았다.” (박형진의 ‘사랑’ 중에서)
안도현 시인은 사랑을 시로 쓰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면서 ‘모든 살아 있음의 제자리’를 생각하고, ‘이 세상 속의 나를’ 아는 사랑이 얼마나 맑고 빛나는지 감탄하고 있다.
이 시집에는 오래 전 내 마음을 흔들었던 시도 들어 있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 나무는 흠집이 많다. //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이정록 ‘서시’ 전문)
너무 성한 몸을 가진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부끄러웠다.
2011년 1월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이라는 보물지도를 여러분에게 보낸다.
4-H가족들도 이 지도를 들고 시의 세계로 탐험을 펼치며 새로운 경험과 추억이 가득한 세월을 보내기를…
이 보물지도로 날마다 행복하기를 기원한다.〈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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