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01 월간 제724호>
<특별 기고> 현대 농업·농촌의 가치와 비전 ②

김 성 수 
(한국4-H본부 부설 농촌청소년문화연구소장 
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

농업·농촌의 역할과 가치

세계적으로 농업·농촌의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투자가치가 낮고, 국민식량공급처로만 인식되던 것에서 벗어나 공익적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농업과 농촌이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하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친환경농업이 지속적으로 육성되어야 할 과제로 부각되었으며, 식량안보, 국토·환경보전, 토지비축 등 국가 유지에 필수적인 기능으로 조명 받고 있다. 또한 농업과 농촌은 그 존재만으로도 농촌사회 유지, 도시집중 억제, 노령인구 부양 등의 역할을 하고 있고 이러한 사회적 기능은 앞으로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농업의 역할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현재 농업을 둘러싼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하이테크 농업을 실현하기 위해 생명공학 등 첨단과학을 끊임없이 응용하고 있으며, 자유무역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농업 개방화가 가속되고 있다. 앞으로 경제사회가 고도산업사회에 이어 탈산업사회로 변모하면서 농업과 농촌이 지닌 생명산업공간·환경생태공간·문화공간으로서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변동과 농업·농촌]

인류의 문명은 수렵사회에서 농업사회,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에 이르렀다. 수렵사회에서 농업사회로의 사회경제적 형태의 변화와 함께 부의 원천이 근력에서 토지로 전환된 것은 약 1만년 전으로 추정되는 농업혁명이 계기였다. 농업사회는 산업혁명을 거쳐 산업사회로, 다시 산업사회는 정보혁명을 거쳐 정보사회로 이행되어 왔다.
이러한 사회변동의 과정에서 농업의 역할 역시 변화하고 있다. 농업은 식량의 생산과 소비측면에서 자급자족적인 성격을 가진다. 즉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먹을 양식을 생산하는, 즉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식량의 일부가 교환되기는 하지만 물건과 물건을 바꾸는 단순한 물물교환이 중심이 된다. 자연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으며 농사를 위협하는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농업기술은 수량을 늘이는 기술, 즉 증산기술이 중점적으로 발달하였으며, 가족의 생계에 필요한 여러 품목을 소규모로 재배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농업은 분산화, 다양화되고 이와 함께 통합성을 특징으로 한다.
자급자족의 농경사회가 자연의 지배시대였다면, 시장화를 지향하는 탈영농의 산업사회는 자연정복을 위한 생태계의 파괴시대로 일컬을 수 있다.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농산물은 판매를 위한 농산품으로 변화하게 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며, 농가 및 농장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화, 기업화를 추구하게 된다. 또한 시장에서 보다 유리한 판매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져 생산보다는 판매를 우선으로 하는 농업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자연과 토지는 약탈되며, 생태계는 파괴된다. 농업기술은 이윤추구를 위한 화학적, 기계적 기술이 극도로 발전된다. 농가 및 농장은 자급자족농이 가족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여러 품목을 재배하는 것과는 달리 시장에 내다 팔 단일품목에 치중하게 된다. 농장의 규모나 경영측면에서도 적정 수준으로의 규모화, 전문화하여 시장경제에 유리한 변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안전한 식품생산을 지향하는 탈산업사회인 후기산업사회(미래사회)는 파괴된 자연 복원을 추구하는 인간과 자연의 공영시대로 지칭될 수 있다. 좋은 식품을 생산하고 공급하기 위해 탈시장화 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산업사회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시장이라는 기능을 통하여 농산품을 사고 팔던 것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거래하고, 소시장 및 지역시장화 된다. 자연과 조화를 추구하며,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확연하다. 깨끗하고 안전한 식품을 생산하기 위한 농업기술이 발달하며,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다품종 소량생산, 유기적 통합, 탈규모화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산업사회가 성숙되어감에 환경 친화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을 지향하게 되고, 농업부문에 있어서는 이미 선진국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과 같이 농업의 외부경제효과와 같은 비교역적 기능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농업·농촌의 가치와 역할]

농업은 경제 및 산업적 측면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활, 문화, 사회 및 자연적 특성 등 모든 측면과 연관된다. 농업은 우리에게 식량 이외에 목재, 면화, 비단 등의 원재료를 제공함으로써 생활 및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을 공급한다. 또한 산림, 호수, 늪지, 토양, 지하수와 같은 자연환경을 유지하는 데 공헌해 왔다. 이처럼 농업은 농촌사회의 형성을 통해 자연과 인간 사이의 조화롭고 지속 가능한 상호교류를 가능케 해 왔다.
최근에는 농업과 농촌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심화된 농촌의 피폐화, 농산물 무역자유화, 근대화 패러다임의 한계 등을 계기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논의들은 농업·농촌에 대한 역할을 산업적, 경제적인 측면으로 국한시켜 평가하던 시각에서 비경제적 기능, 사회·문화적 기능 등을 포함하는 다원적 기능으로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고 있다.

[농업·농촌의 기능]

○ 산업적 기능
첫째로 ‘국민 식량 및 원자재의 공급’을 들 수 있다. 농업의 기본적 가치는 인류의 생존을 유지하는 것에 있다. 농업은 식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길러서 생활에 필요한 생산물을 얻는 것에서 발전해 왔으므로, 농업의 일차적인 기능은 인간의 생명유지를 위한 먹거리 공급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의(依), 식(食), 주(住)이다. 그 가운데서 옷과 집에 관한 문제는 근래에 이르러 농업 이외의 분야에서 많이 해결하고 있지만, 식량만은 여전히 농업에 의존해야 할 만큼 농업은 인류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인구가 점점 많아져서 식량수요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반면, 곡물 생산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어 앞으로 식량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세계인구 57억 가운데 7억이 굶어죽는 상태이고, 15억이 영양실조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식량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지구 환경파괴로 인한 엘리뇨, 라니냐 등 기상이변으로 대규모 홍수와 가뭄이 불규칙적으로 발생하고, 농경지가 사막처럼 쓸모 없는 땅이 돼 버리는 현상이 계속되어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의 경지면적의 60배(1억2000만 ha)가 사막으로 변해 기아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둘째로 ‘농촌인력의 고용 및 소득기회 제공’이다.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전체적인 노동력 공급 규모에 비하여 비농업 부문의 고용 능력이 적은 단계에서는 농림업 부문이 잉여 노동력을 고용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농림업의 위축은 실업률을 증가시키고, 한편으로는 도시의 서비스업에 대한 취업의 불합리한 비대를 초래하여 도시 문제와 사회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어 전체 노동력의 공급 규모를 상회할 만큼 비농업 부문의 고용 능력이 확대되면 잉여 노동력을 흡수한다는 총량적 의미보다는 이미 농림업 부문에 오랜 기간 취업하여 온 유동성이 낮은 고령의 농림업 취업자에게 계속하여 고용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의 산업별 취업자 구조를 보면 연령이 높을수록 농림어업 부문의 취업자 비중이 높으며, 더욱이 농업 취업자는 대체로 40세 정도부터 비농업 부문으로의 전직(轉職)이 급격히 감소하여 50세 이상이면 거의 농촌에 정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기간 농업종사자의 농업 생산 활동은 물론 고령자에게도 취업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농가 인구가 고령화되는 추세에서 선진국에서도 농업은 ‘실버(silver)산업’이라고까지 일컬어지고 있다. 머리가 흰 노인들이 하는 농업이란 말이다. 일본에서도 ‘산짱 농업’이라고 하여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주머니의 농업이 되어 간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농업의 산업적인 효율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겠지만,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들은 세심한 주의와 관리가 필요한 시설원예라든가 축산의 보조 노동력으로 충분히 역량을 발휘하며, 나아가 유기농업을 통하여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한 사례도 많이 발견된다.
따라서 앞으로도 고령화 사회로의 이행이 전망되는 가운데 어떻게 하면 효율과 안정을 추구할 수 있는 농업·농촌을 병존시킬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이다. 자칫하면 농업의 사회경제적 기능을 조화있게 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농촌사회의 유지에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그리고 농어민이 안정된 농촌 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국토경영의 차원에서 생산기반을 정비하고 생활환경을 개선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산업의 능률면만을 의식한 농업구조 조정에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목록
 

간단의견
이전기사   가볼만한 농촌마을 9곳 소개
다음기사   4-H과제활동 활성화 계기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