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01 월간 제724호>
<학교 4-H회 활동 소감문> ‘영우 의료기기 주식회사’를 꿈꾸며

조 영 우 회원〈서울 동산정보산업고등학교4-H회〉

지독한 방황의 시작은 중학교 3학년 가을부터 시작됐다. 친구들과 같이 고등학교 진학문제를 상의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고,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태어나 처음으로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프로게이머’였다. 당시 선생님과 부모님께서는 내 선택이 성급하다며 반대하셨지만 고집 센 나를 설득시키지 못하셨다.
2007년 3월 ‘한국게임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해 1학기를 마친 나는 여러 대회에 참가하였고, 또 그 대회에서 ‘STX 프로게임단’ 코치에게 주목을 받아 연습생으로 입단해 훈련할 수 있었다. 대중 앞에서 게임을 했던 나는 어린마음에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 연예인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는 착각에 빠져들었고 내친김에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결심까지 했다.
학교생활과 프로게이머 두 가지를 병행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출석해도 된다는 대안학교인 성지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3개월 후 코치님은 조용히 날 부르셨고, 요즘 성적이 부진하다며 탈퇴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셨다. 그 때의 소외감과 막막함이란 17살 학생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설명하기도 어려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2008년 3월 동산정보산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년이 걸려 찾은 제자리에서 이전에 고집 세고 남들과 타협할 줄 모르고 이기적인 자신을 바꾸고 싶었다. 이런 사정을 아신 담임선생님께서는 ‘4-H’란 동아리 활동을 추천해 주셨다. 우리 학교는 정신지체 장애인 학교인 ‘정민학교’와 마주보고 있는데, 4-H회에서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꾸준히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고, 학교 학생을 대표하는 총학생회장이라는 막중한 책임까지 안겨주었다.
중증지체장애아 학생들로 구성된 ‘정민학교’에서 내가 담당한 일은 중학교 1학년 학생들 점심식사를 도와주고 양치를 해주는 일이었는데, 밥과 반찬을 흘리고 쏟는 것은 다반사고, 밥을 먹다가 토하는 학생이 있었다. 또 음식을 밖으로 던지는 학생까지 있어 식사시간이 아니라 전쟁터 같은 분위기에 놀란 나에게 그 반 담당선생님께서는 나를 처음 본 학생들이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껴 더 강한 행동을 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다음날 선생님의 말씀대로 학생들은 다소 안정된 느낌이었는데 나 역시 첫 날보다는 요령이 생긴 듯 했다. ‘정민학교’에서의 어설픈 봉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몇 개월이 지나 운동장에 나뭇잎 색이 예쁜 초록색을 띠고 있던 어느 날 나는 평소 나를 보기 위해 점심시간만 기다린다던 재성이와 같이 산책을 하다 잠시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무 그늘 밑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순간 재성이의 휠체어가 방지턱에 걸려 쓰러졌다. 놀란 재성이는 내 팔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지르고 나는 휠체어를 세워 다시 재성이를 앉히며 “형이 미안해. 몰랐어, 재성아”하고 안심시켜 담당선생님께 안내했다. 그 날 밤 재성이가 잡았던 내 팔에는 약간의 멍이 들어 있었고 재성이가 괜찮은지 걱정이 됐다.
며칠 뒤 재성이와 산책을 할 때 재성이의 팔 힘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에게도 휠체어 바퀴를 돌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성이는 날마다 온 힘을 다해 휠체어를 돌리고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쉬지 않고 돌려야만 한다. 휠체어는 재성이가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나는 2년 전 중학교 3학년 가을처럼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면서 재성이 같이 몸이 불편한 친구들에게 삶의 희망과 행복을 나눠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10년 후 나는 ‘영우 의료기기’라고 하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전동차 생산과 특수 장애인을 위한 맞춤식 의료기기를 생산하는 제조회사를 설립해 직원의 50%를 장애인으로 고용해 운영할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건강한 나의 신체를 너무 혹사시켰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리한테 부끄러웠다. 건강한 신체에 감사하고 나의 건강함을 나누어 행동의 자유를 잃어버린 이들과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내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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