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01 월간 제724호>
매화골 통신 ⑧ 농사 지어 밥을 먹는 일

-황악산 수채화-    이동희 / 소설가

민주지산 등산을 하겠다고 한국문인산악회 회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백두대간 등산 코스이다. 비는 오는데 버스 한 대로 30여명이 온다고 안내도 하라는 것이고 여기 농민문학기념관에서 세미나를 하겠다는 것이다.
회장 오만환, 총무 김운향 시인이 내려오면서 여러 번 연락이 왔다. 9월 11일 토요일 서울 사당동 전철역에서 아침 8시 출발한 버스는 길이 많이 막혀 3시간도 더 걸려서 황간에 도착하였다.
관광버스로 오긴 했지만 경부선 황간역은 서울과 부산의 정중앙에 위치한 시골 기차역이다. 무궁화호가 하루 서너 번 서는 한적한 정거장이지만 광장이 넓다. 옛날 목탄차로 쉴 새 없이 벌채한 나무를 실어다 쌓아놓던 곳이다.
비가 계속 오고 있었다. 역전 광장 앞에 있는 올뱅이국밥 집으로 들어가 식사부터 하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었다. 선주후면이라 하였던가. 매곡 양조장의 막걸리를 곁들여 속들이 찌르르 하자 식당을 다 차지한 문인 산악회 회원 작가들은 호떡집에 불이 난 듯이 떠들어대었다.
“우리는 산으로!”
“우리는 산으로!!”
아직 산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는데 기고만장이었다.
알딸딸하게 반주를 곁들인 점심을 하고 다시 버스를 탔다. 오늘 일정은 농민문학관으로 가서 문인산악회 가을 세미나를 갖고 등산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민주지산까지 종주는 아침부터 포기하고 황악산 직지사 코스를 택하기로 하였는데 비가 오고 있어 등산은 불투명했다.
황간에서 차로 5분 거리인 매곡의 농민문학관에 내려 거기 소장하고 있는 작가들의 저서와 자료들을 훑어보았다. 농민 소설가 이무영, 유승규, 오유권, 박경수 등과 향토적인 시인 김용호, 구상, 김규동 그리고 민족 작가 한용운, 안수길 등 작가들의 저서와 자료, 작가상(作家像) 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기영, 조명희, 이태준, 홍명희 등의 소설들도 있다.
삐걱거리는 제3전시실에는 옥천 태생 흙의 작가 유승규 유품 전시를 하고 있었다. 원고, 수첩, 메모장, 편액, 상패, 애장서, 명함, 전화기 등 모든 유품을 모아놓은 농민소설가 유승규 코너 외에 이무영, 김용호의 서지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문학’ 외의 북한의 자료, 단군 관련 저서들도 집합시켜 놓았다.
일정이 촉박하여 화부차를 마시며 귀경재(歸耕齋)에서 세미나를 진행하였다. 주제발표는 오양호 평론가(한국문협 평론분과회장, 인천대 교수)의 ‘만주로 떠난 시인’, 백석(白石)의 수수께끼 생애에 대한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질문 토론 시간은 주지 않았다. 남은 일정이 촉박하였기 때문이었다.
마을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큰 산이 황악산이었다. 황학산이라고도 하고 건천산, 천덕산이 같이 붙어 있었다. 그 너머에 직지사가 있었다. 문인산악회 나들이이므로 산을 올라야 되는데 비가 그치지 않아 등산은 생략하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우산을 받고라도 산에 오르자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희망자는 비를 맞으며 황악산을 넘기로 하였다.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이며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인 괘방령에서 계속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각호산 민주지산 삼도봉 석기봉이 된다. 종주를 하려면 서너 시간 족히 걸리는 코스이다. 비도 오지만 고령자도 있고 이미 시간을 많이 소비하였다. 그래서 일부는 버스로 괘방령을 넘어 직지사로 바로 가고 문인산악회의 체면을 유지하겠다는 사람들이 등산을 하였다. 엄한정, 김운향, 정유준, 이경옥 시인, 이재인, 이영호 소설가, 이신자 수필가 등이 마을의 박우양 동창회장의 짚차에 짐짝처럼 꾹꾹 눌러 타고 어촌리 마을 뒤로 갔다. 그도 안내를 위해서 그 팀에 붙었다. 풀섶이 우거져 길도 보이지 않는 곳을 마구 달려 산 밑으로 갔다. 거기 저수지 앞에서 어촌리 남한승 이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별로 다니는 사람이 없어 길이 묻혀 있었기 때문에 그가 특별히 부탁을 하여 안내를 해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길을 찾지 못하고 산 속에서 헤맬 뻔하였다. 참으로 고마웠다. 시골 인심을 느끼게 하였다. 괘방령 민주지산으로 오르내리는 산마루 갈림길에서 남한승 이장과는 헤어졌다.
“고마와요.”
그는 악수를 하는 것으로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뭘요.”
“농사철인데 바쁘실텐데…….”
“억지로라도 좀 쉬어야지요 뭐.”
숨을 헐떡거리면서 쉬는 것이라고 하였다.
“정말 고마워요.”
“정말 미안해요.”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여 모두들 한 마디씩 하였다.
“어는기라요?”
남 이장의 농담을 되새기며 산길을 내려왔다.
운수암까지 내리막 길을 반 시간 가까이 걸었고 거기서 직지사까지 평평한 길이지만 다시 반시간도 더 걸어야 했다.
등산팀들은 직지사 산문(山門)만 스치고 한국의 가장 오래된 절의 천불(千佛)도 못 보고 외곽으로 돌면서 종전박반가상사(種田博飯家常事), 농사 지어 밥을 먹는 것이 공부를 깊이 해본 사람이 아는 진리라는 직지심경(直指心經) 구절(253) 독경 소리만 들었다. 불교는 팔만대장경으로 가르쳐도 말이 부족할 수가 있지만 손가락 하나만 들어서 가르쳐도 남을 때가 있다.
절 앞으로는 국제조각공원이 있고 그 옆으로 김소월, 정지용…. 한국 대표적 시인들의 시비가 총망라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곳 출신 시조작가 백수(白水 정완영 선생)문학관이 있다.
직지사에는 민영이 영동문인협회 회장이 포도를 한 상자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장 근처에는 동동주를 파는 집이 즐비하고 지짐이를 구수하게 구워놓고 손님을 끌었지만 고속도로 길이 막힌다고 서둘러 대었다. 올라갈 적에는 추풍령 IC로 해서 가려는 것이다.
직지사 주차장에서 손을 흔들어 배웅을 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골이란 대접할 게 경치밖에 없는데 계속 질척거렸다. ‘비는 사랑을 타고’라는 영화가 있다. 달리 보면 한 폭의 수채화가 될 수도 있다. 여기 인심과 직지의 마음을 담고 갔으면 좋겠다.

 
 
 한국문인산악회 회원들이 농민문학기념관 귀경재에서 좁은대로 비집고 앉아 농민문학론을 쓴 오양호 교수의 주제발표를 듣고 있다. 장윤우·정득복 시인, 정소성 소설가도 눈에 띈다. 일부 체면파들은 우중에 황악산을 오르다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포즈를 취했다. 비가 와서 우중충한 그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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