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01 월간 제724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해마다 세금을 내는 부자 소나무, 석송령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에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에 이수목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 온 농부였다. 하지만 그의 집안은 손이 귀했다. 환갑을 넘긴 노인이었지만 그는 그때까지 자식이 없었다.
노인은 논과 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죽을 날이 가까워 왔기 때문에 그 재산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러던 어느 무더운 날, 노인은 집 안에 앉아 열심히 부채질만 하다가 시원한 그늘이 있는 소나무로 갔다. 석평 마을에는 나이가 500살이 넘은 우람한 소나무가 마을 어귀에 서 있었다.
이 소나무가 심어진 것은 500여 년 전이었다. 당시에 풍기 땅에는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났다. 그때 마을 앞 개천으로 어린 소나무가 떠내려 왔는데, 지나가던 길손이 그것을 건져 마을 어귀에 심었던 것이다. 그 소나무가 자라 높이 10m, 둘레 4.2m, 그리고 그늘 면적이 1070㎡(324평)에 이르는 고목이 되었다.
노인이 나무그늘을 찾아 누워 잠이 들었는데,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려 왔다.
“걱정하지 말아라!”
그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나무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소나무가 말을 했나?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소나무를 올려다보았을 때,
“걱정하지 말아라! 걱정하지 말아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까보다 더 큰 소리였다.
노인은 까무러칠 듯이 놀랐다.
‘소, 소나무가 진짜 말을 하네! 세상에, 이럴 수가!’
그때 노인은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야, 정말 희한한 꿈이네. 소나무가 내게 말을 걸어오다니. 그런데 소나무는 왜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
노인은 나무그늘에 앉아 소나무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소나무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모든 것을 자기한테 맡기라는 게 아닐까? 내 문제를 해결해 줄 테니.’
노인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에 잠겼다.
‘그래. 바로 그거야. 소나무는 내게 재산을 자기한테 물려 달라고 한 거야. 그렇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겠지.’
노인은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소나무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당장 군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논밭을 소나무 앞으로 돌리는 등기 이전 수속을 밟았다.
‘석송령(石松靈)’. 이수목 노인 소유의 토지 3930㎡(1191평)를 물려받아 토지 대장에 오른 새 주인의 이름이었다. 주민등록번호도 ‘3750-00248’이었다. 이리하여 석송령이란 소나무는 이때부터 해마다 꼬박꼬박 재산세를 내게 되었다. 그리고 석송령이 갖고 있는 논밭에서 얻어진 수익금은 해마다 이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전해졌다.
이수목 노인이 소나무에게 자기 재산을 물려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소나무가 땅 주인이 되어야 자기 재산이 마을의 공동 재산이 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1927년에 있었던 일이다.
이수목 노인은 소나무에게 자기 재산을 상속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석송계’를 만들어 이를 관리하고, 지금도 해마다 ‘부자 소나무’를 위해 음력 정월 열나흗날 자시(하오 11시부터 상오 1시까지의 동안)에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 조선의 왕들은 나무에 벼슬을 주었다면서요?

조선의 왕들은 나무를 사람처럼 생각하여 나무에 벼슬을 내렸다. 세종은 용문사 은행나무에 ‘당상직첩’이라는 높은 벼슬을 주었고, 세조는 속리산 법주사 입구의 소나무에 정2품 벼슬을 주었다. 이 소나무는 ‘정2품송’이라고 불리는데,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1464년 법주사로 행차한 세조는 가마를 타고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가지가 쳐져 있어 가마가 걸린 것이다. 그때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가마가 지나가도록 해 줬다. 세조는 이 소나무를 기특하게 여겨 정2품 벼슬을 내렸다.
그 밖에 연산군이 어린 시절에 잠시 머물렀던 강희맹의 집에 있는 늙은 소나무에 정3품 벼슬을 주었고, 고종은 아버지 대원군의 집인 운현궁에서 어린 시절 올라가 놀았다는 소나무에 종2품 벼슬을 주었다. 하지만 두 소나무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정3품 소나무는 강희맹의 집이 철거되면서 함께 없어졌고, 종2품 소나무는 일제 강점기에 벼락을 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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