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01 월간 제724호>
<제4회 전국 학생4-H 과제발표대회 백일장 최우수상> ‘박물관 울렁증’ 드디어 사라지다!

김 채 린  회원 〈전북 전주용흥중학교 3학년〉

‘이번 4-H백일장 주제가 과연 뭘까?’ 그동안 글짓기 경험도 많았던 만큼 긴장이 되었어도 내심 자신했는데 뜬금없이 ‘백제문화유적 탐방’이라니.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에 순간 멍했다. 사회, 그중에서도 국사는 나의 역린(逆鱗)이나 다름없다. 순서대로 외워나가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소수림왕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김유신은 대체 무슨 연예인인지…. 혼이 나가게 된다.
그렇게 한숨만 푹푹 쉬다가 생글생글 웃으며 가는, 4-H를 통해 친해진 언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그때 내게 무슨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 눈에 하늘색의 점들이 점점히 박혀왔다. 옹기종기 떠드는 다른 회원들의 모습과 함께 주변의 환경이 찬찬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질질 끌리던 발에 힘이 들어갔다.
발걸음이 가벼워져서인지 거부감 없이 박물관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부여국립박물관은 이미 가족들과 함께 갔다 왔던 곳이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와서 그런지 익숙하게 다가왔고, 그래서인지 긴장감이 꽤나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박물관 내부를 열심히 들여다볼 생각까진 없었다(국사 울렁증은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박물관 안의 전시물을 바라보고 설명을 세세히 짚어 내려가는 다른 4-H회원들의 모습을 보자 평소라면 진작에 나왔을 비웃음은 전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의아한 나머지 ‘대체 저렇게 열심히 볼 수 있는 걸까? 왜?’ 이런 호기심이 앞섰다.
그 박물관 탐사자들의 줄에 나도 끼었다. 진지한 그 눈빛들을 따라 유적들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나도 내가 한때 비웃던 그 진지한 자세로 감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고 지루한 국사의 참고자료’로 인식했던 문화유적을 감상하는 건 의외로 쉬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까지 기피했던 게 무안해질 정도로 즐거웠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배웠기에 기초상식으로 알고 있던 유적지들을 직접 본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경험이었으니까. ‘이게 뭐지?’ 라고 생각했던 것을 설명을 보고 이해하는 것도 즐거웠고, 옥반지나 금비녀를 보고 갖고 싶다고 침을 흘리기도 하고, 줄의 앞에 여자아이들이 금자개를 보고 진짜 금인가, 가짜 금인가라고 열띤 토론을 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웬만한 개그프로 보다도 흥미롭고 즐거웠다. 또한, 박물관은 유적뿐만 아니라 지루함을 방지하려는 것인지 미니모형 같은 게 많았고 실제 사람을 재현한 밀랍인형도 많았는데 잠시라도 약간 지루할 즈음엔 활력소가 되었다.
부여국립박물관에서 내가 즐겁게 본 것은 꽤나 많은데, 이곳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송국리 유적의 미니모형이 있어서 정말 즐거웠다. 국사교과서에서 비파형 청동검만 봐왔던 내 눈에는 심플하다 못해 밋밋한 부여의 간돌검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부여의 토기는 민무늬 토기였는데 신기하게도 둥글고 뾰족한 끝에 받침이 있었다(전에는 선사시대 것과 같은 건 줄 알았다).
정림사지에서는 예쁜 장식물이 많아서 지루하기는커녕 눈을 빛내며 유리관을 뚫을 기세로 구경했다. 백제 때 제작된 것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귀걸이와 달개, 목걸이는 정말 예뻤다. 아! 교과서에서만 봤던 칠지도. 칼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특이한 모양새. 상징적인 검이라지만 장난감검 같아서 웃음이 났다. 그리고 난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백제는 토기 기술이 무척 뛰어났다.
설명을 읽어보니 백제는 고구려 토기, 중국 한나라 및 육조시대 토기와 신라, 가야의 기법을 일부 수용했기 때문에 토기 기술이 많이 발달했다고 나와 있었다. 예쁜 거라고는 귀걸이, 옥 목걸이만 보고 눈이 돌아가던 내 눈에도 백제의 토기는 무늬와 모양새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또 처음 안 사실은 백제 때 목간을 많이 썼다는 것이다. 역시 옛날엔 종이가 흔치 않았으니 목간 같은 게 발달했던 것 같다.
정림사지에서 가장 감탄했던 건 그 유명한 불상이었다. 국사 시간에 백제의 국교가 불교였다는 건 배워서 알고 있었고 불상 제작수준이 상당하다는 것도 알았지만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질 정도로 부드러운 옷자락과 부처의 자애로운 표정은 정말이지 상상 이상이었다.
이렇게 적고나서야 실감이 난다. 내가 유적지를 이토록 즐겁게 감상하고 느낀 게 많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웃음도 난다. 이제껏 박물관 얘기에 질색하던 내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주제가 백제문화유적지 탐방이니만큼 박물관에서 알게 된 점을 나열하려 했지만 왠지 김빠져서 중도에 관뒀다.
내가 오늘 박물관을 처음으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던 원동력은 새로운 지식을 채워나가는 게 아니라 박물관을 구경하는 사람들, 예쁜 유적들, 이미 알던 것을 실물로 본다는 흥분, 난생 처음으로 즐기게 된 박물관, 이 모든 것이었으니까. 이번 탐방기에서 내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건 박물관을 즐기는 방법과 내가 드디어 박물관에 거부감을 없앴다는 것이다. 어쩌면 남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차곡차곡 채우는 동안 나는 괴상한(?) 방법으로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알아가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흥미 위주로 감상을 했으니까.
그래도 처음이었다. 이렇게 즐겁게 박물관을 활개치고 다닌 것은. 박물관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는 것 이상으로 박물관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또한 중요하고 꼭 지녀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백일장을 위해서 떠난 탐방길에서 이토록 큰 수확을 얻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직도 이 두근거림과 흥분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언제 어느 박물관을 가더라도 오늘의 설렘과 두근거림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4-H회원들도 한번쯤은 나 같은 과정을 겪었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런 만큼 4-H회원들 모두가 나처럼 이 첫 설렘을 언제까지고 간직하길 빈다. 이 글을 끝맺고 있는 지금까지도 진정되질 않는 이 흥분은 분명 앞으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사 울렁증인 나의 작은 극복을 지루하게 나열한 것뿐인 나의 탐방기는 이로써 모든 보고를 마친다. 비록 지루한 글이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면 하는 나의 작은 소망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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