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확기 복숭아밭에서 - 이동희 / 소설가
"내외가 날만 새면 밭에 가서 산다
그것이 건강과 금슬의 비결이다"
8월에 들어서면 과일이 쏟아져 나온다. 없는 과일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이 절기를 대표하는 것이 포도와 복숭아다.
하우스-비닐하우스를 말한다.-에서 생산하는 것은 8월 초부터 나오지만 그냥 노지에서 재배하는 것은 중순을 넘어서야 봉지를 따기 시작한다. 온 마을이 포도 생산 출하로 정신이 없다. 그로부터 한 1주일 정도는 포도 농사의 대목이다. 밭에서는 따고 연방 경운기로 실어다 마당에 부려 놓은 것을 준비된 박스에 집어넣음으로써 상품이 된다. 박스에는 브랜드 이름과 생산자 이름 전화번호까지 인쇄되어 있어 꼼꼼하게 뒷마무리를 해야 한다. 이미 여러 해 숙련된 손놀림으로 척척 담고 눈이 저울이고 손이 저울이다.
대개 가족들이 식구대로 동원되어 박스 처리를 할 경우 한 송이 한 알이라도 여축이 없다. 몇 년씩 대놓고 일을 해 주는 사람들도 가족처럼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한다. 부녀자들의 노동력이 진가를 발휘하는 때이다. 하루 일당은 다른 때와 달리 4만 5천원을 준다.
복숭아는 밭에서 바로 박스 처리를 한다. 다 같은 생물이지만 복숭아는 덩어리가 커서 이리 저리 굴리는 것이 좋지 않아 될 수 있으면 손이 덜 가게 하는 것이다. 알의 크기에 따라 10개 12개 15개 22개 등 여러 단계로 만들어진 난자에 담는다. 여기서도 역시 눈이 보배였다. 박스 안에 알이 자리를 잡고 움직이지 않도록 스티로폼으로 눌러 놓은 난자에 얇은 종이를 받쳐 넣는다. 종이는 대개 노란 색이나 분홍색 종이를 많이 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였지만, 실은 식품이 화학용기에 닿지 않게 하는 센스였다. 한 머리는 따면서 한 머리는 담고 그리고 계속 실어 나르는 것이다. 농협 집하장으로 바로 간다.
복숭아를 따다 보면 어쩌다 땅에 떨어져 깨지는 것도 있고 못 생긴 것도 있어 그런 것은 박스에 담지 않는다. 그것은 주인 몫이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 몫이다. 주인은 그런 것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 돈을 벌려고 농사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장장이의 집에는 식칼이 논다고 하지 않던가.
상리 남기태 씨는 1만4876㎡정도 복숭아를 재배한다. 천중도 장택 만생황도 단금도 등 양적으로도 많지만 그에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 있다. 달고 맛이 제일 좋았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는 잘 모르지만 마을에서는 제일로 쳐 주었다.
“그 비결을 좀 공개할 수가 없을까요?”
“질문이 틀렸네요.”
“예?”
“있을까요 해야지 없을까요 하면……”
그런 얘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우스개 소리이다.
“수종과 토질에 달렸겠지요 뭐. 같은 장택이라도 굵고 잘고 달고 신 것이 있지요.”
겸손하게 솔직하게 대답한다. 이장 일을 보기도 하여 마을 회관에서 수시로 영농 정보를 방송한다.
자기가 가진 노하우는 그것이 바로 경쟁력이었다. 장인들은 여간해서 그 비방을 말하지 않는다. 어떻든 이 집 복숭아가 제일 먼저 동이 난다. 그렇다고 더 비싸게 받지도 않았다. 그것이 또한 경쟁력이었던 것이다.
마을의 모든 복숭아는 집집마다 맛이 다르고 때깔이 달랐다. 그리고 결국은 다 소비가 되고 바닥이 났다.
중리 백운학 씨는 큰 길가에 집을 빌딩으로 올려 토목 건축 회사인 무슨 개발, 미장원, 당구장으로 세를 주었고 주인은 뒤로 붙은 볕이 잘 안 드는 방 2개에서 살림을 한다. 한 번은 뽀빠이가 출연하는 무슨 공개방송에서 이들 부부를 제일 금슬이 좋은 부부로 소개를 하여 그날부터 그렇게 자타가 공인을 하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마을에서 유일하게 4대가 같이 사는 유복한 집이기도 했다.
그도 복숭아를 40년 이상 재배하였다. 핏들에 400평 잿말에 700평인데 한 번 심어놓은 과수에서 관리만 잘 하면 수확은 줄지 않는다. 잿말 것은 왕도인데 심은 지 20년 정도 된다. 때를 맞춰 약을 치고 전지를 하고 바닥의 풀을 매고 거름을 주는 것이다. 그것을 사람을 사서 하면 타산이 맞지 않고 내외가 날만 새면 밭에 가서 산다. 그것이 건강의 비결이요 금슬의 비결이기도 하였다.
백운학 씨 내외는 아침 7시인데 벌써 밭에 나와 있었다. 아직 알이 작다고 봉지 속에 든 복숭아를 만지면서 인사를 하자 그의 지식을 고쳐 주었다.
“그런데 따기 며칠 전에 급속도로 굵어진다고.”
“그래요? 거 참 신기하네.”
“희한하지. 금년엔 냉해가 심해서 어떨까 했는데 그런 대로 된 것 같아요.”
보통 2000박스 하는데 계산하기 좋게 만원씩 치면 2천만원이다. 굵은 것은 2만원 이상 나간다.
인공수정 약이 있는데 그건 사용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한 해 농사를 버릴 것이냐 어쩔 것이냐의 중대한 기로에서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었다.
“항상 불안해요.”
“잘 하고 있는데 뭘.”
“하는 데까지 해야지. 주저앉아서 못 일어나는 날이 그만 두는 날이라.”
“아직 주저앉으려면 멀었겠는데. 구구 팔팔은 문제 없겠어.”
그보다 나이는 세 살 위지만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좌우간 뭘 하든 꿈적거려야 돼야.”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거네.”
농촌에 젊은 사람들은 구경할 수가 없고 노인들만 서성거리고 있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장남은 같이 데리고 살지만 직장 생활을 하고 둘째는 외지에 산다. 다른 집들도 자식들은 다 밖으로 나가고 없다. 마을 가운데 둥구나무 밑 의자에는 노인들만 앉아 있다. 서글픈 풍경이었다.
그러나 농촌 마을은 어떻게 보면 노인들의 천국 같은 생각도 들었다. 해가 뜨면 일어나 일을 하고 더울 때는 그늘에 쉬고 추울 때는 또 불 앞에서 쉬고 막걸리도 한 잔 하면서 힘이 자라는 대로 풀도 매고 가지도 치면서 흙에 묻혀 사는 것, 아무 것도 두려울 것도 없고 부러울 것도 없고…….
개똥밭에 살아도 이승이 낫다고 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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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고 금슬이 좋고 배 불리 먹고 철따라 과일이 있고……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는가. 흙 속에 살면 죽음마저도 두렵지 않다. 포도와 북숭아 농가에서는 그동안 가꾸어온 수확을 앞두고 있다. 돈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마지막 단계까지 날씨가 잘 해 줄지 무슨 일이나 일어나지 않을지 불안하다. 경운기를 타고 복숭아 밭으로 출근하는 백운학 씨 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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