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01 월간 제722호>
<4-H인의 필독서> 앤서니 브라운 ‘돼지책’
엄마의 고충을 읽어낸 그림책

여름방학이다. 야호! 아이는 쾌재를 부를 터이지만, 에구구구… 엄마는 앓는 소리를 감추지 못한다. 더운 여름날, 이 복중에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집안에서 복닥거리는 일은 부담백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엄마가 사랑하는 자녀를 잘 양육하는 일은 기쁨이다. 그렇지만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육아,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까지 더해지면 어느새 엄마는 몸과 마음이 지치고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이런 엄마의 고충을 읽어낸 책이 있다. 그것도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다. 사실 필자는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에 이처럼 진지한 주제가 담겨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바로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이다. 앤서니 브라운이 글을 쓰고 그림도 그렸다. 그는 독특하고 뛰어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그림책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기존의 평가대로 아주 강한 첫인상을 남겼고 그 이후 이 작가의 그림책을 모두 읽었다.
그림책은 책 내용 뿐 아니라 그림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책 표지부터 읽어야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 표지에는 분홍 바탕에 가족사진과 같은 그림이 액자처럼 들어 있다. 그런데 가족사진의 구도는 좀 특이해서 엄마가 아빠를 업고 있고 아빠는 두 아들을 업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엄마가 온 가족을 업고 있는 거다. 엄마의 표정은 무표정하다. 하지만 아빠는 입이 귀에 걸릴 만큼 환하게 웃고 있고, 두 아들 역시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다. 여기에서 책 제목에 대한 언급을 다시 한 번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번역본의 제목은 앞서 말한 대로 ‘돼지책’이다. 영문판으로는 ‘piggybook’. 영어로 ‘piggyback’은 ‘등에 탄, 목말 태워서, 업고’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작가는 엄마 등에 업힌 가족들을 살짝 비꼬고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서 ‘piggybook’이라는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그 의미를 알고 난 후, 책 제목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피곳씨는 두 아들인 사이먼, 패트릭과 멋진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 멋진 정원에다, 멋진 차고 안에는 멋진 차도 있었습니다. / 집안에는 피곳씨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곳씨와 두 아들이 당당한 모습으로 그림책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이 다른 그림책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멋진 집에 딸린 정원과 차고, 차가 피곳씨와 두 아들의 소유였던 것처럼, 집안에 있는 피곳씨의 아내 역시 이들의 부속물로 묘사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피곳씨와 두 아들은 언제나 소리친다. “빨리 밥 줘!”라고. 그러면 엄마는 혼자 식사 준비를 해서 상을 차린다. 식사를 끝낸 세 남자는 아주 중요한 회사와 아주 중요한 학교로 달려가 버리고, 엄마는 설거지와 청소, 빨래 등의 집안일을 마치고 일을 하러 간다. 엄마 역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집안일은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맡고 있는 여자의 몫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온 두 아들과 피곳씨는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한 통의 편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편지에는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한 줄의 글이 남겨져 있다. 이 장면에서 이전까지 ‘튤립 무늬’였던 벽지가 ‘놀란 표정의 돼지 무늬’ 벽지로 바뀐다. 편지를 쥔 피곳씨의 손도 돼지 앞발이다. 다음 장부터 피곳씨와 두 아들은 돼지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책 이곳저곳에는 돼지 그림이 숨겨져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림 속 돼지를 찾아내는 것을 재밌어 하면서 더 깊이 책 속으로 빠져든다.
손수 저녁을 짓는 돼지가 된 세 남자. 돼지가 밥을 짓는 광경은 상상에 맡기겠다. 며칠이 지나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집은 돼지우리처럼 되어 버린다. 아이들은 꽥꽥대고 피곳씨 역시 꿀꿀대며 심술을 부린다. 최악의 상황에서 세 남자는 피곳부인에게 ‘제발 돌아와 달라’고 사정을 하고 엄마는 집에 있기로 한다. 세 남자는 집안일을 돕고 엄마는 행복해졌다. 세 남자만 부려먹고 엄마는 공주처럼 군림했느냐고? 아니다. 엄마는 자동차 수리를 한다. 이 작품은 현실 속의 흔히 있는 가사노동 문제를 작가 특유의 유머와 위트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무더운 여름이 행복하려면 무엇보다 엄마가 행복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름방학을 맞은 기념으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이 ‘돼지책’을 읽으며 토론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이 작은 일을 계기로 엄마가 행복해지고 온 가족이 행복해지는 기적이 가정 가정마다 일어난다면! 생각만으로도 신나는 일이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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