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01 월간 제722호>
<제3회 전국 학생4-H 과제발표대회 백일장 노력상 수상작> 으악! 졸려!
임  재 영 회원〈전북 전주제일고등학교4-H회〉

이상하다. 아까부터 내가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느낌이다. 분명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 있는 곳은 이상한 기와집도 있고…. 저기 어떤 할아버지가 계시네? 여쭤보러 가야지.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전 전주제일고 임재영인데요, 여기가 어디에요?”라고 묻자 “예끼! 이놈! 조용히 해! 지금 우리 유생들이 공부하고 있단 말이다!”라고 대답하시는 게 아닌가?
“죄송해요. 근데 유생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할아버지?” “이놈! 할아버지라고 계속 할테냐! 나는 호가 퇴계, 이름이 이황이라는 사람이다. 이황 선생이라고들 부르지.”
‘헉! 여긴 어디지? 조선시대에…. 그럼 장소는 어디지?’ “그럼 선생님, 여기는 어딘가요?” “이런 바보같은. 여기는 내가 유생들을 가르치는 ‘도산서원’이라는 곳이다. 설마 서원이 뭔지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서있었다. “저런, 내가 설명해주지. 서원은 중국 당 현종 때 여러 가지 전서원 설치에서부터 유래됐단다. 전서원은 일종의 학술기관으로 명현제사와 인재를 기르는 사설기관이었단다. 그때 조선은 건국 초, 고려의 사원을 대신하여 서원과 비슷한 재, 서당 등의 학술기관을 설립했는데, 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기능, 성격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단다.”
“그러면 선생님, 서원은 누가 처음 만들었나요?” “좋은 질문, 최초의 서원은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란다. 백운동서원은 ‘안향’이라는 학자께서 유생을 배양하기에 힘쓰신 성과로 국가에서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이라는 액과 여러 가지 생필품과 노비를 함께 하사하셨지. 그 후 나라에서도 서원설치에 힘을 기울여 결국 서원의 숫자가 많아지기 시작했단다.” “그러니까 서원은 유생들의 공부를 돕는 일종의 대학교 역할을 하는데다가, 학자의 제사를 모시는 기능을 함께 했군요! 그런데 서원은 국가기관이었나요?” “초기에는 국가기관으로 국가에서 증설했지만, 후기에는 개인이 창설하여 국가의 보조를 받을 수 있었지. 우리 도산서원도 그런 종류의 하나란다.”
“제가 책에서 읽은 것으론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서원이 건립되었다면서요?” “그렇단다. 내가 유생을 기르던 곳은 서당인데, 내가 죽자 유생들이 나의 학업을 기리고, 이곳에서 공부한다는 의미로 도산서원을 건립했지. 우리 도산서원의 구조를 봐라. 여기가 주 교육시설이란다. 그곳을 중심으로 배향공간, 부속건물로 이뤄져 있단다. 전체 교육시설은 출입문인 진도문과 중앙의 전교당을 기준으로 좌우대칭으로 배열되어 있지. 동서로 나뉜 광명실은 서재로 이곳에서 주로 유생들의 학업이 이뤄졌지.”
“와. 옛날에도 이런 곳이 있었다니 정말 놀라워요. 그런데 서원은 왜 급격하게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서원은 본래 일종의 특전이라서 토지세와 군영 기피, 나중에는 사림파 세력의 원동력이 되어 붕당에 가담해 당정에 골몰하고, 서원을 근거로 양인을 토색하는 폐단이 생기게 됐지. 그것을 보다 못한 대원군은 서원에 대한 모든 특전을 없애고 대부분의 서원을 정비해 결국 47개의 서원만 남게 됐지.”
“서원은 좋은 점도 있었지만 나쁜 점도 많았구나. 근데 서원이 현대의 사립대학인데 이 둘이 뭐가 다른가요?” “서원은 제사의 기능이 있는데 반해 요즘 사립대학은 그런 것이 없지. 또 이때의 서원은 일대일 교육방식이 주로 성행했는데 반해, 요즈음의 사립대학들은 일대다수 교육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어, 일대일 학습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지지. 하지만 서원과 대학 모두 열심히 공부를 했다는 점에서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 너도 어서 공부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난 우리집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정말 졸립다. 근데 왜 이렇게 뭔가 많이 배운 것 같지? 나도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민족의 생각을 이어받아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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