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는 제법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시험 기간이 되면 짜릿한 희열 속에 아드레날린이 팍팍 분비되는 것을 느끼며, 나는 공부를 했다기보다 싸움을 했다. 냉정하게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스스로를 괴롭히는데 도사가 되었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돈이나 지위나 명예 따위로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행복에 대해 갖고 있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일곱 살 때에 행복한 사람이 열일곱, 스물일곱에도 행복할 수 있으며 마흔일곱, 예순일곱에도 끝까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느끼고 즐기지 않으면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꽃자리에서 금은보화를 휘감고 있어도 그는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할 수 있는 것도 재주이고 능력이다.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에 저당 잡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그래서 행복하지 못했던 나는 엄마가 되어 아이에게 스스로 행복할 기회를 주기 위해 한걸음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
아들아이가 다니는 대안학교에서 학기말 고사가 시작되기 바로 전날, 한해를 마감하는 학부모들의 송년 잔치가 있었다. 까만 밤을 하얗게 밝히다 보니 슬그머니 걱정이 되긴 했다. 애들 시험이 내일인데 우리가 이렇게 놀아도 괜찮을까?
“아이들 시험이지 우리 시험인가? 걱정 말아요. 그들에겐 그들의 삶이 있어요!”
호기로운 선배 학부모의 말을 믿기로 했다. 확실히 아들아이는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 가는 중이었다. 시험 첫날, 전날의 과음으로 제시간에 깨워 주지도 못한 불량 엄마에게 한 마디 불평이 없었다. 그저 엄마의 모자란 잠과 쓰린 속을 걱정할 뿐. 이처럼 착한 아이를 공부를 못한다, 시험을 못 봤다는 이유만으로 타박할 수 있을까? 내가 단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기막힌 점수를 떡 하니 내밀어도, 틀렸다며 사선으로 내리는 비가 아니라 맞았다고 동그라미를 그리는 물웅덩이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눈을 지닌 그를.
소박하지만 진실한 시가 내게도 이런 물러섬과 바라봄이 맞다고, 맞다고 동그라미를 그려 준다.
“수학 시험 볼 땐데요 /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 아, 짱나 // ……(중략)…… 그런데요, 운동장 물웅덩이 보니까 / 맞았다, 맞았다 하면서 / 동그라미를 그리는 게 아니겠어요? / 틀린 게 하나도 없어요 / 다 동그라미예요 / 다 // 선생님, / 내 답안지가요 / 물웅덩이였음 졸라 좋겠어요 / 아, 진짜” - 김수열 시 〈비 오는 날〉에서
〈김별아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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