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01 월간 제718호>
<지상 논단> 종자강국을 꿈꾸며…

신 종 수  연구관 (농촌진흥청 기술경영과)

세계 상업 종자의 60% 이상을 세계 10대 종자기업이 공급하고 있고, 상호 협력을 통하여 ‘사다리 걷어차기 전략(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개념화한 것으로 먼저 사다리를 타고 꼭대기에 오른 선진국이 자기들이 딛고 올라온 사다리를 치워버림으로써 후발국들의 도약을 가로막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으로 진입장벽을 구축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종자주권을 지키고 종자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시기이다.
치열한 세계 종자전쟁의 실체와 세계종자시장을 주도하는 세계적인 종자기업들은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그들이 보는 종자산업의 미래는 어떠한지, 그리고 과연 우리나라는 종자강국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만약 가능하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한 알의 종자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처럼 종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언뜻 보면 종자산업이 전통적인 굴뚝산업처럼 느껴지지만 종자 한 봉지의 가격이 같은 무게의 금덩어리 보다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고부가가치 산업인지 실감하게 된다. 또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노만 볼로그 박사는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사회정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는 모든 인간을 위한 충분한 식량입니다. 식량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의 도덕적인 권리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식량이 없이는 인간은 고작해야 몇 주 밖에 살지 못하며, 식량이 없이는 사회정의를 위한 모든 다른 요소들은 무의미한 것들입니다”라고 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기본이 식량이고, 그 식량을 만드는 기본이 종자라는 점에서 종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곡물 자급의 중요성 높아져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오면서 국제 곡물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식량 수출국의 농민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데 반해, 식량수입국들은 돈이 있어도 식량을 제때에 충분한 양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미국에서 수확한 옥수수의 상당량이 바이오 에탄올 제조를 위한 원료로 사용되었다. 이에 따라 옥수수 가격이 연쇄적으로 급등하고, 이를 주식으로 하는 멕시코 등의 국가들은 금융위기에 갑자기 급등한 옥수수 가격까지 이중고를 겪게 되었고, 해당 국가의 국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견디다 못해 폭동을 일으키는 상황까지도 연출이 되었다. 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는데 필리핀의 경우 쌀자급률이 미흡한 현실에서 갑자기 급등한 국제 쌀가격으로 국가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주곡인 쌀 만큼은 자급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 없이 금융위기를 극복하는데 전력을 쏟을 수 있었다.
또한 최근 에너지 가격의 상승에 따른 대체연료의 수요 증대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바이오에탄올 등의 생산 및 사용량 증가로 인한 식량의 비식량 용도로의 사용이 증가하여 풍부한 농업생산 기반, 부존자원 및 경제력을 지닌 국가들의 부는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있지만, 경제적 상황이 열악하고 농업생산 기반 및 자원이 빈약한 국가들의 경우에 식량 부족에 대한 압박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식량부국과 식량빈국 간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국내 종자기업 체계적 육성 시급

우리나라 종자시장은 규모면에서 총 5810억원으로 추정돼 전 세계 종자시장의 약 1.1%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등록된 종자업체는 대부분 소규모 생산·판매업체이다. 반면 신품종 육성, 종자품질관리 측면에서 규모화·전문화된 업체는 소수에 지나지 않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독과점 체제가 고착되어 있는 세계 종자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규모화된 기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따라서 국내 기업을 글로벌 플레이어로 육성하기 위하여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의 성장과정을 검토해보면 전문 분야에서 기술력을 확보하고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세계 수준의 기술력과 자금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 기업의 규모화는 부실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향후 지속적인 국제경쟁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정부의 단기적인 자금지원책 보다는 중장기적인 육성전략이 필요하다.
최근의 세계 종자산업의 변화를 분석해 보면 대규모 글로벌 기업이 종자산업을 주도해 가고 있지만 의외로 규모가 작지만 강한 세계적인 전문기업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기업들의 특징은 백화점식 사업이 아닌 몇 가지 작물군에 집중하여 부가가치가 높고 수준 높은 품종을 육성하여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상황을 활용하여 작지만 강한 전문기업 육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산업 육성의 방법 중에 점, 선, 면 전략이 있다. 이 전략은 일단 시장을 세분화하여 표적시장을 선택하고, 표적시장의 고객군의 요구에 맞는 맞춤형 고품질 상품을 출시하여 점을 찍고, 그 점들이 많아지면 점들을 서로 연결하여 선을 만들고, 그 선들을 또다시 연결하여 면을 만드는 전략이다. 즉 작지만 강한 전문기업들이 생겨나고 성장해서 그들끼리 인수합병을 통하여 규모를 키워가고, 차후에는 일정 커다란 면이 되어 글로벌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접근법으로 가장 시급한 것이 개인 육종가나 중소규모 종자업체들이 전문 분야의 기술력을 배양하고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능성 성분분석 및 병리검정 등 시설 및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공통기반기술의 전문적 R&D 서비스 활성화 지원 등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는 공공 R&D 사업을 활용하여 전문기업 육성에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종자관련 전문인력 육성대책 마련해야

종자산업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전문 인력인데 우리나라에는 육종가 및 종자처리, 생산 분야에 전문가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므로 전문인력 육성이 매우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특히 단순히 대학이나 대학원에 과정을 만들어서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육종을 전공했다 하더라도 일자리가 없으면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산업의 수요를 조사하고 그 수요와 요구에 맞는 현실적인 전문인력 육성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해외 인턴제도 및 개도국 원조 사업과 연계하여 양성된 젊은 종자전문가들이 해외에 나가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국가 브랜드를 제고시킬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변화의 기로에 서있는 우리나라 종자산업이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발전해 중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고추, 인도에서 제일 유명한 브로콜리, 일본 최고의 무,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미의 종자를 수출하는 세계적인 전문기업을 다수 보유한 진정한 종자강국이 되는 꿈을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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