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1 격주간 제918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둔한 사람이 오히려 크게 되는 이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게 된다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
 - 《논어(論語)》 중에서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공부는 학(學)과 습(習), 혹은 효(效)와 각(覺)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학(學)’의 한자를 잘 살펴보면 어린이(子)가 손으로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책을 읽어서 배운다는 것이다. ‘습(習)’은 어린 새가 날개(羽)를 움직이는 모습을 상징한다. 책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어느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두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효(效)’는 따라하기를 통해 배우는 것을 뜻한다. 무늬(文)를 주고받는(交) 것이다. 본받는 것을 의미한다. 책을 읽어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따라서 해보는 것이다. 생활 속에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깨달음(覺)이 생기는 순간이 온다. 그 깨달음은 단순히 책을 읽었을 때 추상적으로 느끼는 것과 다르다. ‘각(覺)’의 한자를 보면 ‘눈으로 보이는 것처럼(見)’ 선명하고 확실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다소 추상적이고 애매하다. 그러나 그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서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결국은 눈에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보이는 때를 만나게 된다. 그게 공부의 완성이다.
외우다보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한 것을 실천하다보면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학(學)과 습(習), 효(效)와 각(覺)이 서로 연결되고 이어지며 서서히 학문이 완성되고 인격이 완성된다.
“아무리 열심히 책을 읽고 배우더라도 스스로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을 것이며(學而不思則罔), 혼자서 생각만하고 열심히 배우지 않으면 반드시 위태롭게 된다(思而不學則殆).”
《논어(論語)》에 나오는 글이다. 생각한다는 의미의 ‘사(思)’는 정수리를 뜻하는 ‘신()’과 마음을 뜻하는 ‘심(心)’이 합쳐진 글자다. 정수리는 뇌를 뜻하므로 이성적인 것을 의미하며 마음은 감성적인 것을 의미한다. 두 가지가 서로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합쳐져야만 진정한 나의 생각이 된다. 이는 실천을 통해 몸과 마음이 모두 알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송나라의 대학자 주자(朱子)는 자신의 처남이자 제자인 정순(程洵)에게 편지를 보내며 위의 문구를 인용한 후에 이렇게 충고했다.
“내가 그대와 토론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대가 매우 똑똑하다는 것일세. 그렇기에 책을 읽을 때에도 오랜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도 빨리 그 핵심을 파악하더군. 핵심을 빨리 파악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재능임에 분명하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네. 단순히 파악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 몸과 마음이 푹 젖어들도록 음미해보고 실제 생활 속에서 실천해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뜻일세. 학문이란 단지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네. 명확하게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겨 몸과 마음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지. 몸과 마음에 익숙하게 만들지 않으면 ‘나는 나대로, 아는 것은 그저 아는 것대로’ 있게 되어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되고 말지 않겠나. 아는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진짜로 아는 것 아니겠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재미도 없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는 단점도 있다네. 몸과 마음에 깊숙이 간직하려면 반드시 실천이 이루어져야 하지. 핵심을 파악하는 게 둔한 사람이 오히려 나중에 크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네. 알아서 실천하기도 하지만 실천을 통해 알게 되기도 한다네. 이것을 잊지 말게나.”
말이 홍수를 이루는 요즘이다. 제대로 알고 말하는 것인지, 제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인지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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