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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5 격주간 제9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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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착한나들이] 20년 후의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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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에도 우리는 만나 사랑할 수가 있다. |
견지망월(見指忘月)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본다는 뜻이다. 내겐 20년 만에 고개를 돌려 달을 본 친구가 있다.
친구는 애정 결핍으로 손톱을 물어뜯었고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자신을 잉여인간이라고 믿었으며 친구도 나밖에 없었다.
그녀의 엄마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그녀를 임신했고 낙태를 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결혼을 하게 된다.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외할머니에게 보내졌다. 곧 남동생이 태어났고 엄마는 동생을 업고 가끔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이 죄인이며 동생이 태어나자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죽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10살도 되기 전이었다. 시장에서 엄마를 발견하고 달려가자 밀치며 소리쳤단다.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 그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동그라졌다. 당시 엄마는 술에 취해 있었다고.
그녀는 커서도 서울서 학교를 다니느라 친척집을 전전했다. 20살이 되던 해 그녀는 자살을 시도했다. 엄마는 병원에서 퇴원한 그녀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갔다. 그러나 잊힐 때쯤 또다시 가방에서 수면제를 발견하자 엄마는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내가 죽으마! 그녀는 그날 엄마를 버려두고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녀가 엄마를 이해한 건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였다. 그녀를 임신했기에 전처 자식이 일곱이나 되는 집으로 엄마는 시집을 갔고 그녀를 잘 교육시키려는 일념 하나로 서울로 보낸 것이라고. 그러나 그건 진정한 이해가 아니었다. 세상이란 도화지에 잘못 떨어진 물감처럼 그녀는 자신을 못 견뎌 했으니까.
낙엽이 쌓이던 늦가을, 그녀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후 2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그녀는 죽은 엄마와 화해하게 된다.
기적은 버스 안에서 일어났다. 출근하던 중 창밖에 날리는 가로수 잎 사이로 문득 엄마를 본 것이다. 임종을 준비하라는 의사 말에 눈물을 말끔히 닦고 병실로 갔는데 의식이 오락가락하던 엄마가 빤히 쳐다보더니 유언처럼 말했단다. “울지 말고 살아” 숨이 끊어져도 자식의 눈물이 보이는 엄마. 그날의 눈빛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이어서 수면제를 삼키던 엄마의 모습과 내가 죽으마! 라던 목소리도 들려오더란다. 그 후 그녀는 죽을 생각을 버렸으니 결국 엄마가 그녀를 살린 셈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고 한다.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나도 죽을 수 있을까?” 그때 번개 치듯 그녀는 깨달았다. 내가 힘든 일을 엄마가 했다는 걸! 자신이 엄마에겐 목숨을 버릴 만큼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행복은 깨닫는 자의 몫이다. 그녀는 가슴이 벅차올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고 한다. 그녀를 임신했던 당시 엄마에겐 약혼자가 있었고 모든 걸 용서했지만 엄마는 딸을 위해 자신을 포기했다. 한 여인의 가혹했던 운명을 비난만 했던 딸! 약을 먹은 엄마를 버린 딸! 그러나 엄마는 원망하지 않았다.
우리는 자신의 상처만 보며 살아간다. 언제나 잉여인간이었던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는 기적, 그 비밀은 뭘까? 고개만 돌리면 된다. 달은 늘 거기 있으니까.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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