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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5 격주간 제89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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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환의 고전산책] 부드러움(柔)과 굳건함(剛) |
“거세한 돼지의 어금니는 길(吉)하다”
豕之牙 吉(분시지아 길)
-『주역(周易)』 중에서
성현(聖賢)들이 남긴 글을 읽다보면 상대적인 두 가지 개념을 묶어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만나게 된다. 흔히 들을 수 있는 음(陰)과 양(陽)도 그런 예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유학(儒學)에서 말하는 음(陰)과 양(陽)은 서로 상대적인 것이지만 태극(太極)이라는 하나의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로 분리해서 파악하면 안 된다. 이 세상을 하나로 보면 그 안에 음과 양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내 몸도 내 마음도 하나이지만 그 안에 음과 양이 공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늘(天)과 땅(地)도 마찬가지다. 조화로움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해를 기해년(己亥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己)는 10가지의 천간(天干) 중 하나다. 흔히 말하는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가 10가지 천간이다. 해(亥)는 12가지의 지지(地支) 중 하나다. 흔히 말하는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가 12가지 지지다. 이 두 가지가 순서대로 서로 결합하여 시간을 나타내게 된다. 결국 하늘(天干)과 땅(地支)이 결합하여 오늘을 있게 만들었다는 철학적 개념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느 하나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서로 상대적인 것들이 결합해 세상을 만들었고 서로 상대적인 것들이 결합해 나를 만들었다.
기해년(己亥年)을 ‘황금돼지의 해’라 말하기도 하는데, 천간 중 하나인 기(己)가 황색을 뜻하고 해(亥)는 돼지를 뜻하기 때문에 이를 결합해서 하는 말이다. 이것을 가지고 ‘황금=재물운’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조금 억지스러운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기해년(己亥年)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면 지지(地支)에 해당하는 해(亥), 돼지에 대해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역(周易)》 연구에 일가견이 있던 송나라의 학자 정이(程)가 설명하는 ‘돼지’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역(周易)》에 나오는 대축(大畜)괘는 움직임을 멈추고 힘을 비축하는 것을 뜻한다. 위에 산이 있고 아래에 하늘이 있음을 뜻한다. 강건한 기운이 산 아래 멈추어 그 힘을 비축한다. 큰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멈추고 안을 충실하게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큰 결실이란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이롭게 만드는 큰 이익을 뜻한다. 다만 억지로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거세한 돼지의 어금니는 길(吉)하다(豕之牙 吉)’라고 말하기도 한다. 돼지는 성질이 급하고 억세다. 어금니의 힘도 매우 강해서 위험하다. 양(陽)의 기운이 너무 강해 조화를 잃기 쉽다. 그러나 생식기능을 잃게 만드는 거세(去勢)를 하면 급한 성격이 무디어진다. 어금니를 지니고 있어도 그 사용을 강하고 거칠게 하지 않으니 부드러워진 것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군자는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하늘이 가르쳐준 바른 이치가 음(陰)과 양(陽)의 조화이며, 땅이 가르쳐준 바른 이치가 부드러움(柔)과 굳건함(剛)이다.”
모든 것은 이처럼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어느 하나가 선하고 어느 하나가 악한 게 아니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하면 선이 되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악이 된다. 그렇다면 적절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만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면 적절한 것이다. 나만의 이익을 따르는 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추는 게 적절한 것이다.
기해년(己亥年)은 거센 기운을 지닌 때라고 할 수 있다. 힘이 있다고 마음대로 휘두를 것을 생각하지 말고 조화롭게 조절하여 부드럽게 만들어야 함을 잊지 말자.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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