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5 격주간 제879호>
[이달의착한나들이]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랑
- 백령도, 대청도 -

순수한 사랑이 가득 담긴 아이의 글.


며칠 전 뉴스에서 보았다. 기차에 치여 철로 위에 쓰러진 사람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남자를. 나는 순간 절망했다. 어떻게 사람으로서 저럴 수가 있는가? 그러나 나의 절망을 위로해준 건 사랑의 힘이었다. 5월 말 백령도와 대청도를 여행하면서 만났던 세 사람의 진실한 사랑! 그 사랑은 타인에 대한 비난을 멈추게 했고 한 단계 성숙한 질문을 하게 했다. 그는 왜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을까?
내가 만났던 세 사람, 그들은 심청이와 어린아이 그리고 할머니 한 분이었다. 심청이는 백령도 심청각에서 만났다. 그녀는 설화의 인물에 불과하지만 심청이가 연꽃을 타고 밀려 왔다는 연화리 마을을 지나 심청각 앞에 서면, 저 멀리 황해도 해주의 인당수가 보인다. 나는 그곳에서 뜻밖에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살아생전 백령도에 한 번 가보고 싶구나….” 생전에 말꼬리를 흐리던 아버지. “하필이면 백령도예요? 멀미 때문에 아버진 안돼요.” 그리고 나는 잊어버렸다. 아버지는 왜 백령도에 오고 싶었을까? 아버지가 가고 오랜 후에야 그것이 궁금해졌다. 심청이는 목숨을 바쳤지만 나는 몰랐다.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또 한 사람은 심청각 안에서 만난 아이였다. 그곳에는 연꽃잎 모양 색지에 소원을 써서 붙여 놓은 코너가 있다. 사업번창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취직하게 해주세요, 로또 일등 맞게 해주세요 등…. 수많은 사연 중에 반짝! 내 눈에 들어온 건 아이의 삐뚤삐뚤한 글씨였다. 그 글씨는 글씨 자체로 감동이었다. “엄마 아빠가 오래 살게 해주세요!” 온 마음을 다해 쓴 글은 그 어떤 사랑보다 아름답고 숭고했다. 왕관을 준다 해도 아이들은 부모와 바꾸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 그것이 아이가 어른보다 위대한 이유가 아닐까.
그리고 또 한 사람은 해병대 할머니다. 대청도의 절경 서풍받이 가는 길엔 무덤이 있고 비석엔 ‘해병대 할머니’라고 새겨져 있다. 할머니는 60년 동안 해병들을 자식처럼 돌보다 해병들의 손에 의해 그곳에 묻혔다고 한다. 할머니의 유품은 해병대와 함께 찍은 사진. 할머니는 고물장수와 삯바느질로 연명을 하면서도 그녀의 밥을 안 얻어먹은 해병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옷도 꿰매주고 편지도 부쳐주고 고민상담도 해주다 보니 할머니는 어느새 ‘해병대 할머니’가 되었다고. 심지어 지휘관들은 탈영이 우려되는 병사가 생기면 할머니에게 보냈으며 칼바람 부는 겨울엔 모든 부대원에게 속옷을 해서 입히기도 했다는 할머니.
제대한 수많은 해병들까지 참석한 장례식에서 이호연 해병대사령관은 말했다. “할머니의 사랑은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 의해서 성장하고 전파돼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에서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는 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한다. 여행이 좋은 건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되어 질문해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심청이라면, 작은 아이라면, 해병대 할머니라면 기차 사고현장에서 셀카를 찍은 남자에게도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할까? 사랑이 사람들이 전파해야 할 일이라면 말이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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