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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5 격주간 제86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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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환의 고전산책] 서로 다르더라도 외면하지 말라 |
"통달한 사람에게는 이상한 게 없다
達士無所怪(달사무소괴)"
- 《연암집(燕巖集)》 중에서
중국 송나라의 학자인 정호(程顥)와 왕안석(王安石) 사이에는 매우 넓은 간격이 존재하고 있었다. 정호가 정치적으로 은둔자에 가까운 학자였다면 왕안석은 학자 출신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요즘 우리가 말하는 ‘폴리페서(polifessor)’의 대표격이었기 때문이다.
정호를 유가(儒家), 왕안석을 법가(法家)로 구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실상을 파악해보면 왕안석을 법가 계열로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그는 개혁을 주장한 맹자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유가의 실용적 해석과 응용을 강조했다고 보는 게 옳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가의 학자들 대부분은, 아니 그 이후의 학자들까지도 왕안석을 비난하는 쪽에 섰다. 그리고 그러한 프레임으로 무장하여 왕안석의 개혁정책을 비판했고 더 나아가 왕안석이라는 개인을 폄하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당시 학자 중 최고봉이라 할 수 있던 정호는 달랐다. 정호가 당시 왕안석의 측근으로 불리던 오사례(吳師禮)와 나눈 이야기가 ‘근사록(近思錄)’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하는 말을 왕안석에게 전해주시오. 왕안석의 논문을 여러 편 꼼꼼하게 읽고 나의 의견과 왕안석의 의견이 서로 다른 부분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나의 의견이 무조건 옳고 왕안석의 의견이 무조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학문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것이지요. 나의 것도 아니고 왕안석의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개인적 견해를 넘어서서 서로 의견을 나누어 밝고 명확하게 밝히는 게 중요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아직 부족한 점을 발견한다면 저에게 큰 깨달음이 될 것입니다.”
진리는 계파로 구분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계파에 따라 미리 결론을 내리고 상대를 비난하는 데 몰두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학문이 짧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정호처럼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학문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데 있어 항상 열린 자세를 유지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저 까마귀를 보라. 그 깃털은 매우 검다. 모두들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라. 그 깃털이 빛을 받아 반짝이면 우유 빛깔을 띠다가 금처럼 반짝이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녹색을 지닌 보석처럼 빛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까마귀는 검다’는 것만 옳다고 우겨서는 안 된다. 금색 까마귀도 가능하고 녹색 까마귀도 가능하다. 까마귀에게는 본래 일정한 빛깔이 없다. 때에 따라 변화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항상 검다고 말하는가. 먼저 눈으로 살피기도 전에 먼저 그 빛깔을 정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지도 않고 먼저 색깔을 정한 것이다.”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라 할 수 있는 박지원(朴趾源)이 자신의 조카가 발간한 시집에 써 준 서문(序文) 중 일부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네 작품은 일반적인 시와 달라. 좀 이상해’라는 평을 듣던 자신의 조카에게 위와 같이 이야기하며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통달한 사람에게는 이상한 게 없다. 이상한 게 많다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達士無所怪 俗人多所疑).”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시선도 존중해야 한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존중해야 한다. 정호가 그러했고 박지원이 그러했다. 그게 힘들다면 스스로 아직 공부가 덜 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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