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5 격주간 제867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저울이 다른 사람들
캔디폭탄의 영향으로 소련은 베를린 봉쇄를 해제하게 된다.

12월이다. 정신없이 살다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 길에서 자선냄비를 만나면 떠오른다. 남에게 도움을 주며 살고자 했던 새해의 다짐이. 사람은 두 개의 저울로 산다고 한다. 내가 줄 때는 많이 준 것 같고 받을 때는 조금 받은 것 같은 저울. 그러나 가끔은 주는 저울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친구들과의 송년회에서였다. 송년회에 오지 못한 친구가 있었는데 사연은 이랬다. 그 친구는 오래 전 동생 명의를 빌려 아파트를 사놓은 게 있었다. 최근 가격이 올라 팔았는데 동생이 보내온 돈을 보니 2억이 부족하더란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명의 값으로 2억을 줘야 한다며 법대로 하라고 했단다. 평소 사이가 좋은 자매였는데 통장에 돈이 들어오자 마음이 변한 모양이었다. 지병이 있던 친구는 새로 산 집에 잔금도 못 치르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또 다른 친구는 남편 때문에 집이 날아가게 생겼다고 했다. 그 친구의 오빠는 아이가 셋인데 전세를 전전하다 그마저 갈 곳이 없게 되었다. 그 친구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1억과 대출금으로 부산에 아파트를 사서 오빠를 살게 해주었다. 10년 동안 대출금도 갚고 집값도 올랐는데 문제는 남편이 그 집을 오빠 명의로 해주자고 한다는 것이다. 친구는 게으른 오빠가 미워 공부도 잘해야 장학금 주는 거 아니냐고 따졌더니 남편 왈, 공부 못하는 사람에게 주면 더 힘이 날거라고, 우리가 세상에 없는 장학금을 만들어보자고 하더란다. 그리고 혼자되어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여동생이 있는데 다음엔 그녀에게 ‘힘나는 장학금’을 주자고 하더란다.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감동했다. 그러나 집을 주라는 친구는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밖으로 나오자 눈이 내렸다. 함박눈이었다. 나는 반가워 입을 벌리고 받아먹었다. 하늘 가득 쏟아져 내려오는 눈송이가 사탕이라면 이 겨울이 얼마나 환상적일까? 그러나 그건 실화였다.
2차 세계대전 후 베를린의 물자운송 기지였던 템펠호프 공항의 철조망엔 날마다 굶주린 아이들이 몰려와 달라붙어있었다. 당시 게일 헬버슨이라는 미공군 조종사가 그중 한 아이에게 껌 두 개를 건네준다. 그러자 아이는 껌을 조각조각 잘게 나누어 함께 있던 30명의 아이들과 나누어 먹는다. 순간 조종사는 보게 된다. 행복하게 웃는 아이들 얼굴을. 조종사는 아이들에게 내일을 약속한다. 그는 사비를 털어 밤새워 캔디와 초콜릿을 포장한다. 그리고 다음날 비행기를 향해 달려오는 아이들 머리 위에 뿌려준다. 이 일이 계속되자 동료 조종사와 미국 시민들도 참여해 7개월 동안 비행기에서 2만 3천 톤에 달하는 캔디폭탄이 함박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후 79세가 된 조종사는 베를린 공수 50주년 초청으로 독일에 간다. 그 자리엔 캔디를 향해 달려오던 수천 명의 아이들도 참석해있었다. 그들은 캔디의 힘으로 어른이 되었다고 눈물을 흘린다.
이 세상엔 ‘어른이 되게 해주는 캔디’가 있고 ‘껌을 30조각으로 나누는 아이’가 있고 ‘공부 못해도 주는 장학금’ 이 있다. 저울이 다른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다운 쪽으로 기운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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