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YE, 그대 이름 영원한 4-H!
연포(燕浦) 강 건 주 한국4-H본부 고문
만경생은 4-H/IFYE 사업을 추진하면서 항상 우리의 근대사가 머리에 떠오른다. 바로 134년 전인 1883년 맺은 한·미수호조약 시 미국 제21대 대통령 C. A. Arthur에게 농업기술 지원제의를 요청하였으나 불발로 끝난 역사다. 성공했다면 우리 농업기술은 최소 반세기는 더 앞서 나갔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당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우리의 취약한 외교능력 탓이라 생각되며 우리는 최소 나라의 100년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함을 자인했다.
만경생은 우리의 미래 행복 실현에 굳은 신념과 행동으로 4-H/IFYE 프로그램에 성심껏 노력했다. 사업과정에서 교환생들은 우리가 마련한 사전교육을 성실히 실행해 주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했다. 초기 4-H/IFYE 참가자 자격은 젊은 남녀 25~30세 미혼 농촌출신 혹은 농가 거주 우수한 4-H생활 이수자를 대상으로 했다. 이들은 4-H선진국(미국과 대만) 농가에 3~6개월간 입주하여 초청농가 가족의 한 사람으로 동고동락함으로써 해당국의 생활환경뿐만 아니라 선진 농업을 체험, 습득하고 단위 4-H클럽 회원들 활동을 직접 체험하는 동시에 현지 농사교도사업활동(특히 4-H지도업무와 생활개선 지도) 실상을 관찰하면서 자국의 실정과 비교하고 미래 가능성 등 귀중한 ‘산 교육’을 귀국 후 우리 농촌에 전파하도록 이바지하자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근 10만명의 농촌 청년들이 세계 여러 나라 농촌에서 IFYE 활동을 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4-H 기치’ 아래 응집력은 매우 강력했다.
우리나라에는 한국4-H국제교류협회(1973년 IFYE동문회 발족), 아·태지역엔 ASPAC IFYE(1982년 조직), 세계규모로는 Global IFYE Congress(1967년 미국에서 발족)가 조직되어 국제적 친선과 농촌 청소년 교육사업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날 각국 4-H/ IFYE 출신자들은 각자 자국의 농촌청소년교육사업(4-H클럽 운동)의 실무 책임자로서 혹은 사업매개 추진 핵심세력으로서 4-H운동의 세계화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4-H/IFYE 초기에 한·미 간 4-H는 사업의 포괄적 진행과 업무추진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 상호간 정기적으로 중간, 종료 평가를 개최, 그 결과를 교환하면서 향후 사업 전개에 대비했다. 미국 4-H의 IFYE 전담자 W. Frances, Pressley는 우리에게 보내준 종합평가에서 우리 교환생들 활동을 높이 찬양하는 것이었다. 세계의 많은 재미 교환생들 중에서 한국 교환생들은 특출한 면이 많다고 호평했다. 예의 바르고, 적응력이 왕성하고, 대인관계는 최고로 원만하고, 학습능력이 특출할 뿐 아니라 농장에서의 활동은 최고였다고 했다. 농장 현장에서 사용하는 각종 기계화 장비 중에서도 트랙터 조작과 운전은 ‘척하면 삼천리!’ 그리고 트랙터 부속 각종 장비 조작은 정확하고 아주 민첩하여 가는 곳마다 ‘Korea Number One’으로 갈채를 받았다고 전해와 만경생은 무척 흐뭇했다.
한국 4-H/IFYE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의 IFYE 교환생들 활동 평가는 큰 파장으로 단 시일 내에 우리 강산을 휩쓸었다. 사업개시 3년 후부터는 우리 정부, 여러 사회단체, 특히 농업단체들의 해외연수는 우리 4-H/IFYE를 모범삼아 급속히 확대되게 되었다. 한편, 세상 흐름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했던 완강한 4-H/IFYE 반대세력은 소리없이 소멸되고, 해외 농업연수는 시간을 다투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 실례 몇 가지를 회상해 보면, 1960년대 중반부터 실시된 전국농업기술자협회 주최 ‘회원 일본 농업연수’를 필두로 이 후 90여회에 걸쳐 2천여명의 해외연수, 일본 농업연수(JATP 1966년 3회로 종료), 농진청 주관 농촌전문 지도공무원 교환(PRYLE,1971년), 해외농업 연수생훈련(KATP 1972~1974, 총 253명 3년간 실행하다 미국현지에서 이탈과 1명 사망으로 1974년 중단,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주관(1980~1993, 농·어촌 후계자 해외연수, 동 부녀자 해외시찰, 교사와 지도자)시찰단, 제6차 세계 IFYE Congress(1992년, 대만 개최) 외에도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회원단체 청소년 해외연수 등 연속적인 해외연수 혹은 교환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의 장래 가치를 크게 평가할 수 있다. 우리 4-H/IFYE는 한국의 해외문호 개방과 문화적 승화의 변곡점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미래 지향적 패러다임을 구축할 선도적 역할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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