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5 격주간 제863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죽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
세한도는 가슴 뭉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온 생의 전부를 걸고 산 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지하철 4호선, 선바위역에 내려 6번 버스를 타고 달려간 추사박물관. 추사 김정희는 160년 전 사람이지만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사람들에게 작품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추사, 그는 조선 후기의 문인 서화가로서 이십대에 청나라 대학자 옹방강이 시·서·화가 조선 제일이라는 극찬을 하며 사제관계를 맺은 천재다. 김정희, 하면 떠오르는 것은 세한도! 신동으로 태어나 승승장구하던 그는 윤상도의 옥사 관련해 55세 때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린 것이 세한도다.
‘세한’ 이란 설 전후로 가장 추운 시기를 말한다. 유배 생활 동안 거의 다 등을 돌렸으나 변함없이 스승을 경애했던 제자 이상적. 그는 중국에서 귀한 책들을 구해 처벌도 두려워 않고 스승에게 계속 보내드렸다. 추사에겐 양식과 같은 책이었다. 사무친 고마움을 실어 제자에게 그려 보낸 세한도. 그림엔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텅 빈 화면 속에 얼어붙어 있다. 그러나 잎은 변함없이 푸르러 우리에게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묻고 있다.
어떤 중년신사가 해설가에게 물었다. “세한도는 얼마쯤 할까요?”, “글쎄요… 천문학적인 숫자가 아닐까요?” 나는 씁쓸히 웃었다. 가치 척도가 돈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러나 세한도는 오로지 사람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다. 그래서 세한도는 가슴 뭉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에 일본인 교수가 있었다. 이름은 후지츠카 치카시. 이 사람이 없었다면 세한도는 우리나라 국보가 될 수 없었으며 추사박물관도 설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후지츠카 치카시는 추사를 존경하고 흠모해 평생을 추사 연구에 바쳤으며 방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자기 몸과 같이 여겼던 사람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그가 모든 자료와 세한도를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가자, 고서화 수집가인 손재형이 목숨을 걸고 세한도를 찾으러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는 후지츠카 치카시를 만나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했으나 단호하게 거절당한다. 그날부터 매일 손재형은 말없이 교수 집을 방문해 큰절을 올리고 문안을 드렸다. 석 달 동안 문안이 이어지자 교수는 아무런 대가없이 세한도를 내어주며 딱 한마디를 했다고 한다. “보관 잘하시오.”
그가 죽은 후 나머지 자료도 2006년 그의 아들이 기증하여 추사박물관에 전시하게 된다.
당시 병과 가난에 시달리던 교수는 왜 세한도를 그냥 내놓았을까? 손재형에 대한 감동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세한도를 펼쳐 놓고 춥고 배고픈 겨울에도 푸르른 나무를 바라보며 어떻게 살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아니면 여백에서 울려나오는 추사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평생 흠모하고 사랑해온 이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추사는 평생에 13년 귀양살이를 했다. 유배의 외로움이 투명한 얼음처럼 박혀있는 세한도. 아픔 덕분에 세한도는 국보가 되었다. 그는 한 획을 그을 때 천 번씩 연습했으며 일생 동안 벼룩 열 개와 붓 천 자루를 닳게 했다. 그는 그렇게 필사의 힘으로 한 일본인의 가슴 깊이 들어가 사람과 역사를 움직였던 것이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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