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결국 죽는다
必死可殺也(필사가살야)"
- 《손자병법(孫子兵法)》 중에서 -
춘추전국시대는 사람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과 전쟁이 이어지는 폭력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여기가 바로 지옥’이라는 생각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걸출한 사상가들이 연이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을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부른다.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은 평화와 안정을 간절히 바라게 되고 그런 간절함이 새로운 사상가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간절함은 이토록 위대하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하지만 당시 권력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사람은 유가(儒家)가 아니라 법가(法家)나 병가(兵家) 쪽 사람들이었다. 전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기였기에 당연히 전쟁을 승리로 이끌 사람이 필요했고, 그렇기에 병가(兵家)는 당시 권력자의 입맛에 딱 맞는 인재였다. 병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아직도 회자되는 사람이 바로 오기(吳起)와 손무(孫武)다. 각각 ‘오자병법’과 ‘손자병법’이라는 병법서(兵法書)를 남긴 인물이다.
오자는 오직 승리만을 위해 모든 것을 불태운 인물이다. 그는 원래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문하에서 공부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증자의 문하에 들어가 6년을 공부하면서 한 번도 고향의 노모를 찾지 않았다. 이에 증자가 그를 불러 “공부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노모도 찾아뵙는 게 도리”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오자는 “한 나라의 정승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는 찾아뵙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며 노모를 찾아뵙는 것을 거부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노모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식을 들은 오자는 엎드려 크게 통곡하더니 다시 자세를 바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성공에 대한 그의 의지는 이토록 강건했다. 그러나 스승인 증자의 눈에는 인륜을 저버린 불효자로 비칠 뿐이었다. 증자는 “나는 너 같은 놈을 제자로 둘 수 없다!”라고 선언했고 그는 증자의 문하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독학을 통해 일가를 이루게 된다.
그가 이름을 크게 떨친 일화도 매우 파격적이다. 제나라의 침공을 눈앞에 둔 노나라가 제나라의 침공을 막아낼 장군을 급히 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오자의 이름이 거명됐으나 오자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라는 점이 결격사유로 등장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오자는 아내의 목을 잘라 노나라 왕을 찾아간다.
“오직 노나라의 승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결의를 보이기 위해 아내의 목을 가져왔다.”
그는 장군으로 등용되었고 제나라를 물리치고 이름을 떨친다. 그러나 아내를 죽인 사람이라는 꼬리표로 인해 중용되지 못하고 좌절한다. 이후 여러 나라를 오가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가 위나라의 장군으로 있을 때, 병졸의 몸에 난 종기를 입으로 빨아 치료했다는 일화는 ‘오기연저(吳起疽)’라는 고사성어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던 그였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많은 적을 만들어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사즉생 생즉사(死則生 生則死)’도 ‘오자병법’에 나온 말이다. 그런데 ‘손자병법’에는 이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죽고, 살기를 원하면 사로잡혀 포로가 된다(必死可殺也 必生可虜也).”
오기와 손무의 차이는 여기서 갈린다. 오기는 문제 해결의 방식으로 전쟁만을 생각한다. 그렇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손무는 전쟁을 문제 해결의 방법 중에 하나, 그것도 가장 아래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추구한다.
‘죽기를 각오하면 죽게 된다’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최종적인 목표는 승리도 아니고 죽고 사는 것도 아니다. 그에게 전쟁이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수단을 목표로 삼는 것은 우매한 일이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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