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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5 격주간 제85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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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착한나들이]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끝없는 이야기 |
오랜만에 휴가를 갔다. 사람들 몰리는 게 싫어 여름휴가를 거의 안 가는데 친구들이 섬으로 간다기에 따라나선 것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자월도. 나는 배 여행을 좋아한다. 바다 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섬은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섬’을 보며 쓴 시가 있다.
“바다가 좋아/ 바다가 좋아// 바다로 간/ 산// 이름도 바꾸었지/ 섬이라고// 절벽 끝에/ 등대를 세우고// 밤바다 비춰 주는/ 섬,/ 작은 산”
배 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갈매기의 아름다운 비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얀 날개를 펴고 새우깡을 향해 달려드는 갈매기들. 움직이는 것들이 먹이를 향해 달려들 때의 원초적인 울음소리는 진홍빛 핏빛이다.
뱃전에서 사람들이 새우깡을 던져주면 갈매기는 보이지 않는 동아줄에 묶인 듯 먹이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맨 앞에서 새우깡을 낚아채는 놈, 잽싸게 남이 떨어뜨린 걸 주워 먹는 놈, 물에 빠진 걸 수직하강해서 건져 먹는 놈, 뒤꽁무니에서 눈치만 보는 놈, 갈매기들이 하는 짓을 보면 왠지 가슴이 저리다. 목숨이 붙어있는 것들은 밥줄에 매여 살아간다.
황시백의 자전적 에세이 ‘애쓴 사랑’ 속에는 밥의 이야기가 3부로 나뉘어 나온다. 1970년경 부산, 허기에 지친 주인공은 어느 집 앞에 배추 잎 데쳐놓은 걸 훔쳐 먹는다. 한 움큼 집어 들고 가다가 다 먹으면 다시 돌아와 한 움큼 집어 꾹꾹 씹어 먹는다. 입안에 고인 단물의 묘사가 어찌나 절절한지 내 입에도 침이 고였다.
주인공이 가래침 묻은 담배꽁초를 주워 피우고 피골이 상접해 아무데나 주저앉게 되었을 즈음 눈에 보이는 건 오직 밥뿐이더란다. 순두부백반 한 그릇과 손가락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거라고. 결국 주인공은 밥을 먹기 위해 피를 뽑아 팔기 시작했다. 당시 부산대학병원 푸른 페인트칠을 한 쇠문 앞엔 피를 팔려는 여자와 남자들로 동트기 전부터 장이 섰다고 한다. 당시 팔뚝에 합격 도장이 찍힌 사람들만 피를 뽑을 수 있었는데 하도 피를 많이 뽑아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도 더 이상 피가 안 나오더란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10원짜리 동전을 주워 연탄 한 장을 사 불을 피우고 문을 걸어 잠근다.
세상엔 밥줄처럼 모질고 질긴 건 없다. 나는 울면서 인간이란 갈매기와 달리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동물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공감만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세상의 절반은 기아에 허덕이고 몇 초에 한 명씩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세상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가진 자들의 욕심으로 인해 기아는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지 않는 한 앞으로도 세상은 변치 않을 것이다.
자월도에 내리니 하얀 등대가 보였다. 여전히 내겐 섬이 산으로 보인다. 육지에 살던 산이 바다로 뛰어들어 등대를 세운 사랑! 인간에게 사랑과 밥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를 생각하는데 친구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매혹적이고 끝없는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바다에 왔으니 회를 먹을까? 아니면 가져온 삼겹살부터 먹을까? 아니면?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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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붙어있는 것들은 밥줄에 매여 살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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