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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1 격주간 제85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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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탐방] 4-H활동으로 배운 협동정신, 인생의 기틀이 되어 |
최 왕 진 회장 (전북 무주군4-H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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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왕진 회장은 청년농업인4-H회 활성화가 지역농업의 버팀목이라 생각해 장기 지원정책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 |
녹음이 아름답게 푸르른 산길과 들판을 지나 전라북도 무주에서 최왕진 무주군4-H본부 회장(64·전북부남면·유섬길 148, 섬소마을)을 만났다.
중학교 졸업 후부터 4-H활동을 시작해 4-H와 인연을 맺은 최왕진 회장은 1971년 부남면 섬소마을4-H구락부 회장, 1973년 부남면4-H회장을 맡으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중학교 졸업 2년 후인 1971년부터 지금까지 47년 동안 4-H활동을 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2년 정도 지났을 때로 기억하는데, 농촌지도소 박 선생님께서 4-H활동을 해보자고 집에 찾아오신 것을 계기로 제 4-H활동이 시작됐습니다”
최 회장은 마을을 누비며 남자 회원 10명, 여자 회원 8명을 모아 섬소4-H구락부를 조직했다. 당시에는 남녀가 함께 앉아있을 수도 없던 엄격한 마을 분위기 때문에 4-H회 조직이 매우 어려웠다고.
“섬소마을에 무섭기로 소문난 호랑이 어르신 한 분이 계셨는데, 4-H활동을 허락받기 위해 어렵게 모은 용돈으로 막걸리 한 되와 두부 한 모를 사가지고 가서 4-H활동에 대해 설명을 해드렸지요. 어찌 된 일인지 다음 날 호랑이 어르신 따님도 4-H회에 가입하게 되고 동네 어르신들의 인정을 받으며 4-H활동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1953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4-H활동을 통해 살아가는 방식을 배웠다고 한다. 최 회장은 21세 때 2년간 부남면4-H회장으로 활동하며 380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단체활동을 통해 협동정신을 체득한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역설했다. 최 회장은 먹고살기 어려워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농사일, 전기공사 목도 일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검침원으로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하여 19년간 근무하며 2남 2녀의 자녀를 키워내고 2014년도에 정년퇴직 했다. 퇴직 후 4-H지도자로 활동하며 인삼 6600㎡와 까마중 2600㎡를 재배하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배려하는 4-H리더로 지역사회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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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부터 최왕진 무주군4-H본부 회장, 주승균 전라북도4-H본부 사무처장, 하현진 무주군농업기술센터 주무관. |
최 회장은 한국전력공사를 정년퇴직하기 1년 전인 2013년에 무주군4-H연맹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당시 회원 16명으로 시작해 마을마다 순회하며 회원배가운동을 펼쳤고, 2014년에는 사단법인 무주군4-H본부 조직개편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현재는 무주군4-H본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 회장의 배려심 있는 리더십이 회원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고 협동하여 영향력 있는 단체로 거듭나고 있다”고 임영택 무주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이 자랑을 잊지 않는다.
무주군4-H본부 회원 196명은 최 회장과 함께 하면 못 할 일이 없다는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조직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고 있다. 재정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전 회원이 회비를 내고, 본부와 지도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2014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매년 청소년4-H회원 6명을 선발해 1인당 2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이 사업은 무주군4-H본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4-H지도자의 결속과 후배회원 육성에 열정을 표출하고 있으며, 해마다 무주반딧불축제에 본부 회원과 청년농업인4-H회원들이 함께 쓰레기를 치우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최 회장은 청년농업인4-H회 활성화가 지역농업의 버팀목이라고 생각하며 청년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장기 지원정책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 학교4-H회 활성화에도 큰 관심을 갖고 4-H지도교사가 열심히 활동하는 만큼 승진가산점이 주어지면 좋겠다며 4-H활동지원사업 확대에 물심양면으로 도울 길을 찾고 있다.
최 회장이 4-H활동을 통해 터득한 협동과 봉사정신을 청년농업인4-H회원뿐만 아니라 학생4-H회원들이 이어받아 더욱 더 발전하는 무주군4-H본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신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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