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4-H구락부중앙위원회(현 한국4-H본부) 탄생 <7>
- 4-H 지원 독지가의 나눔의 정신! -
연포(燕浦) 강 건 주 (한국4-H본부 고문)
1920년 전후 미국 농촌청소년사업 민간지원 중앙위원회 사무국장에 E.T. Noble이란 열정적인 4-H업무 추진력을 발휘한 인물이 있었다고 기술한 바 있다. 그는 4-H이념을 깊이 간직하고는 각종 4-H행사와 프로그램 개발 그리고 4-H운동을 지원할 사회적 독지가 발굴에도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다. 그뿐 아니라 그의 풍채는 몸짱을 자랑하는 헐리우드 남배우들 뺨을 칠만한 중년 미남이었다. 그의 능력은 뛰어났다. 초기 4-H운동 중앙급에서 최적의 민간지도자였다. 이런 다재다능한 천부의 재능을 간직한 Noble의 대인관계는 친밀감과 호감을 갖게 하여 많은 4-H사업 지원자들을 유도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A.G. Leonard 사장이었다. 미래 미국 농업과 4-H구락부 운동 발전에 사심 없이 큰 건물 한 채를 4-H중앙회관으로 덥석 기증한 독지가 발굴도 그의 노력 덕분이었다.
우리에게도 68년 전(1949년), 우리 4-H구락부 미래 발전을 위해 우리들에게 ‘멍석을 깔아주신’ 사회 공헌 독지가 조인섭(趙寅燮, 1887~1961년, 개성 출신, 후에 고려은단 부사장, 서울 종로3가 천일백화점 소유, 1948년 경기도 농촌청년 구락부 연합회와 1954년 한국4-H중앙위원회 이사) 사장을 만경생은 여러분과 함께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 조용한 성품에 말씀이 적은 조인섭 사장은 일제 식민지 하에서 식민자본 침탈에 맞서 민족 자본을 강력히 수호한 애국적 사업가이기도 했다. 조 사장은 과거 자신의 무학을 크게 뉘우치며 헐벗은 농촌청소년 교육문제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던 중 광복과 더불어 경기도 내 농촌청소년들이 구락부를 조직, 실천을 통하여 배움의 길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깊이 감동하여 한국4-H운동 도입에 동기를 부여하신 동향인 김동성 선생(1890~1965년, 대한민국 초대 공보처장, 미군정 시 경기도정 자문관)의 권유로 경기도 농촌청년구락부연합회(후에 4-H민간후원단체) 이사로 참여, 많은 재정적 지원을 베푼 독지가였다. 초기 경기도 4-H품평회(오늘의 경진대회, 1948년과 1949년 경복궁 광장에서 개최, 소, 돼지, 닭과 농산물 전시, 소위 경연대회 - 현 4-H연시대회로서 새끼 꼬기, 가마니 짜기가 주요 과제였음) 개최 경비와 시상품 제공 등 초창기 4-H운동 기초를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사유 농지(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소재 27만2744㎡ 외 고양군 등에 산재)를 1949년 경기도 농촌청년구락부연합회 법인 등기 시 기증한 바 있다.
더욱 빛난 업적은 1956~57년 한미재단의 후원에 의해 미국 남부 6개주에서 기증된 한국4-H 지원 우정물자인 가축(소, 돼지, 양, 면양 등 1회에 근 2000여 마리)을 미국 Houston Texas에서 부산항과 인천까지 30여일에 걸쳐 배 멀미를 무릅쓰고 해상 수송과 사육 그리고 축사 청소 등 고된 봉사 작업을 하며 내한한 17명의 미국 4-H부원과 인솔 지도자 1명에 대한 환영식 경비와 귀국 전 1주일 간의 한국 관광, 체류비, 선물 등을 마련하는 주역을 담당한 분도 조인섭 사장이었다. 이외에도 중앙위원회 초기 재정난에 많은 사재를 희사하여 민간 4-H 지원활동 촉진을 위한 사회 공헌의 모범으로 우리 4-H 회원들 사기 진작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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